[뒤끝작렬]황놀부와 일용엄니가 '특별시민'이 된다면…

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2023. 11.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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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KBS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배경은 경기도 김포시다. 1990년에 9월 9일에 첫 방영된 1기 드라마 촬영은 김포시 고촌읍에서 이뤄졌다.

농촌드라마의 대표격인 MBC '전원일기'의 배경은 '양촌리'인데, 공교롭게 김포시에는 '양촌읍'이 있다. 실제 촬영은 경기도 양주시와 남양주시 등에서 진행됐지만 지명만큼은 양촌읍에서 가져온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김포'는 김포평야를 끼고 있는 수도권 제1의 곡창지대로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등장하는 유서가 깊은 지역이다. 한강신도시 건설로 대규모 신도시가 들어섰고 인구도 크게 늘었지만, 상당수 토지는 여전히 농경지다.

행정구역상으로도 김포시는 도농복합시로 동과 읍·면이 함께 공존한다. 도시와 농촌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김포시의 서울편입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실제로 성사된다면 양촌리의 일용엄니도 고촌읍의 황놀부도 양촌동과 고촌동의 '서울특별시민'이 될 것이다.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는 자치구만 둘 수 있고, 자치구에는 읍·면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치시 vs 자치구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황금들녘에서 농민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그렇다면 특별시민이 된 일용엄니와 황놀부의 삶은 더 나아질까? 오히려 정반대일 가능성이 있다. 읍·면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농어촌 지원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치구는 기본적으로 대도시의 행정구역이라는 것을 전제로 조직이 구성돼 있다. 반대로 김포시는 도농복합 지역으로 농어업 지원 조직과 예산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다. 또 자치시의 권한으로 도시계획이나 교통계획도 독자적으로 꾸릴 수 있다.

그런데 김포시가 김포구가 되면 많은 권한은 서울시로 넘어가게 되고 조직과 예산의 축소가 뒤따르게 된다. 인구 51만명인 김포시의 올해 본예산이 1조6천억원인데 반해, 인구 56만의 서울시 강서구 본예산이 1조2천억원인 점만 봐도 자치시와 자치구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경우 1988년 편입 당시 직할시에 군을 둘 수 없어 광산군이 광산구로 바뀐 뒤에 편입이 됐다. 이후 '광산군 설치운동'이 몇차례 일어났는데, 광산구가 되다보니 농촌지원 기능도 미비하고, 세목을 늘리는 것도 불가능해 지역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당시 추진 논리였다.

2000년에는 광산구의회가 '광산군 설치관련 기초조사특별위원회'까지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김포시가 서울 김포구로 편입된 이후 광주 광산구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단순히 서울로 편입이 되고 김포 아파트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편입 논의를 환영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지하철 연장도 더 힘들어진다?


아파트값 또한 '서울특별시'라는 이름값보다는 서울로의 실제적인 교통 접근성에 더 많이 좌우된다. 신안산선 등으로 접근성이 좋아지는 광명시의 일부 아파트값이 이웃한 구로구와 금천구를 뛰어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한때 서울시 편입을 적극 추진했던 광명시는 이제는 편입 논의가 시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포시가 서울로 편입되면 외려 5호선 연장 등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경고하고 나섰다.

이 전 대표는 1일 CBS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포시가 서울시로 편입되게 되면 광역전철이 아니라 도시철도가 되는데, 광역철도는 7대3으로 국비 지원을 받지만 도시철도가 되면 서울시가 6, 국비가 4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이 출근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황진환 기자


그러면서 "서울시계 내로 편입되는 순간 오히려 사업추진 동력이 많이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교통접근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서울시로 편입되더라도 지역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은 결국 자치권한과 예산은 축소되고, 농업지역은 지원이 줄고, 도시지역은 지하철 연장 동력이 외려 더 떨어지는, 그저 '특별시민'이라는 이름 하나 건지는데 만족해야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김포시가 편입되면 서해에 서울항을 조성할 수 있고,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한강하구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서울시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강~아라뱃길 노선도.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2.0 사업에 따르면 서울항은 여의도에 설치하는 것으로 이미 계획이 진행 중이고, 선박은 인천에 있는 아라뱃길을 통해 서해로 드나들게 된다. 신곡수중보가 있어 김포가 있는 행주대교 하류로는 선박 통행이 불가능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6일 "(김병수 김포)시장을 뵙게되면 김포시가 어떤 의미에서 어떤 목표를 갖고 서울 편입을 추진하시는지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판단해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우여곡절 끝에 김포구로 편입된 뒤에는 다른 서울시의 자치구들과 함께 교부금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미운오리 취급을 받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벌써부터 서울 지역 자치구들에서는 "있는 서울이나 잘 챙기라"며 견제 목소리가 나오고있다.

서울 편입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고 아파트값이 오른다면 다행이겠지만, 기대와 달리 상황이 돌아가서 그때서야 "나 김포시로 돌아갈래"를 외친다면 너무 늦은 후회만 남지 않을까. 편입 논의가 총선바람을 타고 급하게 진행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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