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를 느낌표로’ 이지형 기록원이 남긴 의미 깊은 발자취

최창환 2023. 11. 2.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최창환 기자]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기록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형(38) 기록원에게 2023년은 의미가 남다른 해로 남을 것 같다.

이지형 기록원은 지난 5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동남아시안게임, 7월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FIBA(국제농구연맹) U16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커미셔너로 참여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남성 기록원이 국제대회 커미셔너를 맡았던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여성 기록원이 커미셔너로 국제대회의 구성원이 됐던 것은 이지형 기록원이 최초였다.

커미셔너는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경기감독관이라 불리는 직책이다. 외국에서 통용되는 명칭은 커미셔너다. 커미셔너는 경기원의 업무를 관리 및 감독하는 한편, 심판들이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경기 전에는 선수들이 규정에 맞는 복장을 갖췄는지, 양 팀이 선수명단을 비롯해 경기를 치를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는 일을 한다. 경기 시작 후에는 계시기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쿼터별 기록지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등을 살핀다. 경기 전에 할 일이 더 많다. 심판 판정에도 관여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판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이지형 기록원의 설명이다.

한국 여성 기록원 최초의 국제대회 커미셔너였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지형 기록원이 선수나 심판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커미셔너는 FIBA가 인증한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만 맡을 수 있으며, 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선택받은 이들만 커미셔너로 참여할 수 있다. 이지형 기록원은 커미셔너를 비롯해 테이블 오피셜, 인스트럭터, 통계에 이르기까지 FIBA 인증 자격증을 4개나 보유하고 있다.

이지형 기록원은 학창 시절 여자프로농구를 좋아해 직관을 즐긴 팬이었다. 2007년 심판 자격증을 취득한 게 계기가 돼 2008년부터 대한민국농구협회 기록원으로 활동해왔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국제대회 기록원 활동을 거쳐 올해는 커미셔너라는 굵직한 경력도 남겼다.

이지형 기록원은 “심판 출신이 아니라고 하니 외국에서도 특이하다는 반응이었다. 룰을 제대로 아는지 살짝 의심하는 이도 있었지만, 똑같은 시험을 거쳐 커미셔너를 맡았던 것이기 때문에 대회는 잘 치르고 왔다”라고 말했다.

이지형 기록원은 이어 “국제심판이 그렇듯 커미셔너 역시 FIBA 아시아에서 배정을 받아야 맡을 수 있다. 나는 커미셔너 자격증을 취득한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는데 운 좋게 올해만 2차례 국제대회에 다녀왔다. 갈 때마다 마지막 커미셔너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올해 국제대회는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당분간 국내대회 기록원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지형 기록원은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주관하는 국내대회 기록원을 맡는 것은 물론, WKBL 기록원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실기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KBL이 FIBA 룰에 기반을 둔 로컬룰로 진행되는 리그인 반면, WKBL은 유니폼이나 벤치 위치 정도를 제외하면 FIBA 룰로 치러져 이지형 기록원의 실기 교육은 WKBL 기록원들에게 뼈와 살이 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선수들이 차지하지만 농구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선 심판, 기록원 등 수많은 구성원이 필요하다. 과거만 해도 이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하지만 황인태 심판이 한국인 최초 NBA 풀타임 심판에 배정되며 한국 농구에 커다란 이정표를 남겨 인식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황인태 심판이 과거 심판 교육을 받을 때 함께 이수했던 이가 이지형 기록원이었다. 이지형 기록원은 “서로 연락을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소식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협회에서 KBL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리우 올림픽 여자농구 결승전 심판에 배정됐을 때도 ‘잘 풀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NBA 소식을 접했을 땐 ‘결국 해냈구나’ 싶었다. 함께 협회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는 분인지 잘 알고 있었고, 영어 잘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자극을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황인태 심판이 심판 분야에서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이지형 기록원은 기록원과 커미셔너에서 귀감이 되는 사례 아닐까. 이지형 기록원은 이에 대해 “전혀 아니다. 나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라며 손사래 쳤지만,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자부심과 바람만큼은 뚜렷했다.

“경기부원은 인원수가 많지 않다. 심판 교육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그에 반해 경기·통계 교실은 적은 게 사실이다. 농구에서는 경기원와 통계원도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고, 관심을 갖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형 기록원의 말이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오는 10일까지 신인 경기·통계 요원 양성 및 저변 확대를 위한 경기·통계 교실 신청자를 모집한다.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18일부터 12월 10일까지 매주 주말마다 교육을 진행하며, 이론 및 실기 테스트를 통과한 수료자들에게 수료증 및 공인 경기원 2급 자격증을 수여한다.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경기의 구성원이 됐고, 국제대회 커미셔너 역할까지 맡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지원 기록원의 바람대로 2024년은 선수뿐만 아니라 경기·통계의 저변도 확대되는 한국 농구가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_이지형 기록원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