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하마스의 참상포르노

김지산 기자 2023. 11. 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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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지난달 18일 워싱턴포스트(WP) 뉴스를 보면 140만명 구독자를 보유한 텔레그램 채널 '가자 나우(Gaza Now)'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어린이들 사진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곧장 행동하고 분노하라...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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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AI에 의해 생성된 가짜사진/사진=X(옛 트위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 고삐를 죄던 지난달 중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한장이 돌았다. 폐허 속에서 이제 막 돌이 지났을 법한 아기가 엎드린 채 고개 들고 절규하는 모습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아기 표정이 마치 숙련된 아역 배우의 그것 같았다. 노출된 왼손 모양이 어색하고 손가락 개수는 5개가 넘어 보였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이 생성한 가짜로 판명했다. 그러나 사진이 세계적으로 유포된 뒤였다. 심지어 가자 지구 내 일부 팔레스타인 언론인조차 사진을 사실이라고 믿고 SNS로 퍼 날랐다.

인지전(認知戰·cognitive warfare)이다. 목표는 이스라엘의 만행 고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SNS와 AI가 인지전 매체와 수단으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이번 이·팔 전쟁에서 이것들은 활개를 치는 양상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아기는 하마스에 비판적이었던 팔레스타인 여론을 침묵하게 만든다. 아들과 형제를 기꺼이 전쟁터에 내모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양질의 가짜뉴스가 생산을 거듭할수록 여론 조작의 힘은 더 세지고 전쟁은 더 넓은 지역으로 강도 높게 퍼질 가능성이 커진다.

가짜뉴스에 날개 노릇을 해준 건 SNS다. 지난달 18일 워싱턴포스트(WP) 뉴스를 보면 140만명 구독자를 보유한 텔레그램 채널 '가자 나우(Gaza Now)'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어린이들 사진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곧장 행동하고 분노하라...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라고 썼다. 충격적인 가자 지구 내 병원 공격(행위 주체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이 채널 구독자는 3배 늘었다.

텔레그램이 최근 하마스 관련 채널들을 막겠다고 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하마스의 주된 선전 채널인 '가자 나우'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실시간으로 가자지구 폭격 영상과 다치거나 죽은 이들 사진, 영상이 뜬다. 열에 아홉은 어린이다.

사진을 접하면 누구든 목이 메고 먹먹해진다. 하마스는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네타냐후 총리를 나치, 히틀러로 묘사한 피범벅 합성사진과 글을 내보낸다. 공포영화 포스터 같다. 어제의 희생자가 오늘날 학살자라는 기막힌 내러티브다.

'이스라엘은 왜 여기서 멈추지 않는가'. 생각은 이스라엘이 수백명을 살육하고 납치한 하마스와 일단 평화협정부터 체결해야 한다는 지점에 이른다. '빈곤 포르노'를 넘어서는 지독한 '참상 포르노' 인지전이 나에게 통했음을 고백한다. 가슴이 턱 막힌다.

그리고 자문한다. SNS·유튜브가 언론을 대체하는 시대, AI까지 가세한 가짜뉴스·감정 흔들기 물결 속에 언론인으로서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독자들이 곁눈질하지 않고 내 기사를, 언론을 신뢰할 수 있게끔 말하고 써왔는지.


김지산 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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