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풍향계’ 뉴햄프셔州 투표용지에 바이든 이름 없는 이유는
2020년 대선때 바이든 표 몰아줬던 지역, 일각선 ‘흑인 표심’에만 의존 비판
뉴햄프셔 강력 반발…바이든 결국 후보 등록 안해
미국 50개 주(州) 중 초기에 대선 경선이 진행돼 ‘민심 풍향계’로 불렸던 뉴햄프셔주(州)의 투표 용지에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지 않게 됐다. 뉴햄프셔주는 인구가 적어 전체 경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초기에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확인하는 의미가 커 경선 ‘핵심 지역’으로 분류돼왔다. 그런데 2024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결정할 뉴햄프셔주 경선 투표 용지에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이 제외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 등이 최근 보도했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지난 2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첫 경선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원래 미 대선 경선은 아이오와주에서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로 시작, 뉴햄프셔주에서 열리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로 이어져 두 곳은 경선 초반 판세를 가르는 주요 지역이었다. 코커스는 각 정당의 당원들만 참석해 투표하고, 프라이머리는 일반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DNC가 경선 일정을 바꾸면서 아이오와·뉴햄프셔 경선이 뒤로 밀리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경선은 2024년 2월 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시작해 6일 뉴햄프셔와 네바다, 13일 조지아, 27일 미시간 등 순으로 진행된다.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 자신이었다. 지난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은 경선 과정에서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 네바다에서 잇따라 패했었다. 그런데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당시 경선에 투표한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 유권자들 중 90% 이상이 백인이었는데, 미국의 인종 분포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들 주에 비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흑인 유권자 비중이 높다. 민주당 측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인구 구성상으로나, 우리 당과 우리 나라의 전체적 다양성을 반영한다”며 경선 일정 변경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흑인 표심’에 의존하려는 바이든이 자신이 유리한 지역으로 일정을 무리하게 바꾼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이런 결정은 50~100년간 첫 경선을 치러왔던 아이오와·뉴햄프셔주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1920년부터 100년 넘게 첫 프라이머리를 치른다는 전통을 지켜왔고, 이를 주 법률로도 규정하고 있는 뉴햄프셔는 끝까지 DNC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발표 당시부터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주지사는 “우리 프라이머리는 (민주당의 일정 발표와 달리 전국에서) 여전히 전국 첫 예비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아이오와주는 DNC와의 협의 끝에 첫 경선지 자격을 포기하기로 했지만, 뉴햄프셔는 계속 버텼다. 결국 바이든은 지난주 마감된 뉴햄프셔주의 후보 등록 절차를 밟지 않았다.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 용지에 그의 이름도 나오지 않게 된다. 바이든의 재선 선거본부장을 맡고 있는 줄리 차베스 로드리게스는 뉴햄프셔주에 보낸 서한에서 “대통령은 프라이머리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민주당 후보로서 DNC가 공표한 경선 일정 등의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민주당 내 그렇다할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뉴햄프셔주에서 다른 후보가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정되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폴리티코는 “뉴햄프셔주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특히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은 내년 대선에서 상승 요인 보다는 하락 요인이 더 많은데(특정 주를) 적대화하는 것은 안좋은 결정이란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주자들도 내년 대선 일정이 본격화되면서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지지자들이 뉴햄프셔 경선 투표용지에 바이든 대통령 이름을 수기로 입력하자는 ‘바이든 기명 투표’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미 공영 라디오 방송 NPR 등이 1일 전했다. 소수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에선 용지에 없는 이름이 없는 후보도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기입(write-in)할 수 있고, 이 역시 유효표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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