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이건희 유족이 월대 복원에 서수상을 기증한 까닭
“문화재 보존은 미래 위한 것”
복원된 월대 시비 따지기보다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광화문 월대가 복원되고 나서 그곳에 가봤다. 일제 총독부가 한 세기 전 월대를 철거할 때 흩어지고 깨져서 복원에 쓰인 돌 대부분이 새것이었다. 난간석 중 일부와 월대 중앙의 어도(御道·왕이 다니는 길) 맨 앞을 장식한 서수상(瑞獸像) 한 쌍만 옛것 그대로였다. 특히 서수상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생전에 수집해 간직했던 것을 유족이 “의미 있게 활용되길 바란다”며 기증한 것이다. 서수상 앞에 서서 ‘의미 있는 활용’의 뜻이 뭘까 곱씹어 봤다.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군 이가 옛 문화재 보존에 힘쓴 이유도 생각했다. 단순한 과거 복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생전에 이 전 회장은 “문화유산의 보존은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말했다.
내 기억 속의 광화문은 초라하고 옹색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것은 망한 왕조의 흔적일 뿐이었다. 당시 광화문 앞엔 폭 5~6m 좁은 인도만 있었다. 사람은 접근하기 어렵고 차만 씽씽 달렸다. 너른 광장이었던 광화문 앞을 그런 모습으로 바꾼 것이 일제의 총독부였다. 경성(京城) 근대화란 명분을 내걸고 서울 도심에 바둑판 형태의 현대식 도로 29개를 놓겠다며 1912년 경성시구개수안(案)을 발표했다. 덕분에 시원한 길이 뚫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궁궐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전찻길을 낸다며 경복궁 담장을 허물고 서십자각을 없앴다. 만국박람회 개최를 구실 삼아 광화문에서 근정전으로 가는 사이에 있던 흥례문도 헐었다. 전각 500여 개 가운데 일제 패망 때까지 살아남은 것은 36동에 불과했다. 세자 부부의 침소였던 자선당은 통째로 뜯겨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불타 없어졌다. 경복궁만이 아니었다. 원래 하나로 이어졌던 창경궁과 종묘도 그 사이에 종묘 관통 도로가 나며 두 조각 났다.
정작 일본은 자기들 문화재는 끔찍이 아꼈다. 태평양 전쟁으로 미군 공습이 시작되며 교토에 있는 덴노(天皇)의 옛 궁궐인 어소(御所)가 폭격당할 위기에 놓이자 주요 전각을 해체해 자재를 따로 보관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경복궁 전각은 90%나 뜯어냈다. 내건 명분은 조선의 문명 개화였지만 속내는 조선인의 민족적 자긍심에 상처 주고 일본의 이등 국민으로 삼겠다는 심산이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뜯어 굳이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의 정문으로 쓴 것도 그런 이유였다.
월대도 그 와중에 훼철됐다. 그런 월대의 복원에 비판적인 견해가 있다. 망한 나라 군주의 못난 유적을 왜 차량 흐름까지 왜곡해 가며 복원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복원된 월대의 주인은 망국의 왕이 아니라 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왕이 특권을 누리던 공간에서 시민적 자유를 구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월대는 청국 사신들이 드나들며 으스댔던 사대의 상징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는 그랬겠지만 더는 아니다. 세계인이 찾아와 ‘엄지 척’ 포즈로 사진을 찍는 한류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월대의 미래다.
일제가 종묘 관통 도로를 내며 끊겼던 창경궁과 종묘도 오랜 복원 공사 끝에 지난해 다시 연결되며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때도 “왕조 시대의 유적을 뭐 하러 되살리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복원도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 만들기였다.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복원된 담장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됐고 그 길을 서울 시민이 걷고 있다. 두 곳 사이를 지나는 율곡로는 지하 차도가 됐다. 얼마 전 그곳에서 시민 걷기 행사가 열렸다. 옛 왕조의 궁궐을 복원했는데 전에 없던 도시의 새 모습과 기능이 더해졌다. 월대의 복원도 이처럼 미래를 향해 열린 복원이어야 한다. 그곳에 어떤 의미를 더할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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