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05] 가을에 떠난 가객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처럼 거리에는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한” 낙엽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브 몽탕이 1946년에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에서 소개한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한 ‘고엽(Les Feuilles Mortes)’과 차중락이 1966년에 노래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다. 모두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들려오는 노래들이다.
빙 크로스비, 냇 킹 콜 등 유명 가수들이 영어로 번안해 노래한 ‘고엽(Autumn Leaves)’과 달리 이브 몽탕의 원곡은 “진심으로 기억하길 바라. 우리가 친구여서 행복했던 그날들을. 그때의 삶은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태양은 어느 때보다 찬란했지”라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회한과 우수에 젖은 이브 몽탕의 목소리가 애간장을 태우면서 말이다. 떠난 사랑을 가슴 아프게 추억하는 노랫말이 그의 저음과 만나 아련하면서도 짙은 가을 서정을 자아낸다.
차중락이 노래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2년에 발표한 ‘Anything that’s part of you’가 원곡이다. 원곡과 번안곡 모두 이별의 쓸쓸함을 그리고 있으나 원곡에서는 어떤 계절감도 느낄 수 없다. 반면에 차중락의 노래에는 가을의 진한 정취가 드리워져 있다.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려 했으나 떠난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내용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에서 절정에 이른다. 가수 쟈니 리의 회고에 따르면, 본인이 그 노래를 부르려 했으나 마침 실연의 아픔을 겪은 차중락의 목소리로 녹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수 개인의 슬픔이 더해져서 노래에 애달픈 정서가 깊게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차중락은 이 노래를 남기고 1968년 11월 10일 만 26세에 요절하였다. 노랫말처럼 낙엽 따라 가버린 셈이다. 공교롭게도 1971년 11월 7일에 만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호 또한 생전에 이브 몽탕의 ‘고엽’을 번안해 노래했다. 두 가수 모두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낙엽의 계절에 떠난 것은 운명이었을까? “그대 떠난 후 세월은 가고 찬 바람만 불어오네. 낙엽 쌓인 그 길을 지금도 나 홀로 걷고 있네”라는 배호의 ‘고엽’ 노랫말처럼 사람도 사랑도 때가 되면 떠난다.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한여름의 태양과 거친 비바람을 온몸으로 견딘 나뭇잎들이 떠날 때를 알아 자신을 떨구기 때문이다. 그러니 겨울 되어 소멸하기 전에 오색찬란한 빛으로 거리를 메운 낙엽은 모두 ‘가을꽃’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이 조금만 더 늦게 떠나주기를. 비록 가을 앓이로 의기소침해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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