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 “남의 걸로 생색내기”

경기일보 2023. 11.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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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영 천주교수원교구 신부

천주교에는 세례명이라는 게 있다. 이는 천주교의 구원관과도 관련된 것인데 천주교의 구원관은 ‘절대자가 인간을 감시하고 있어 마치 마일리지처럼 선업을 쌓아 그것으로 특정 기준을 통과해야만 벌을 면하고 보상받는다는 식’의 팍팍한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도리어 그와 정반대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그런 ‘외적 업적’보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가 더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래서 가톨릭 신학에서는 근본적인 ‘존재의 변화’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그것이 세례 때 결정적으로 일어난다고 본다.

세례를 통해 이전의 자신에서 죽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결합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 사람의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내는 새 이름을 받는 게 세례명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세례명은 하늘에 있음을 확신하는 성인들의 이름에서 따온다. 그리하여 단순히 새 정체성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세례명으로 정한 그 성인을 자신을 위한 ‘전담마크’로 세우게 된다. 즉, 내가 성인의 모범을 닮고자 그 이름을 받았으니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 주보성인이라 한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마치 생일처럼, 자신의 세례명이자 기도 후원자인 주보성인의 천상탄일(순교사망일)을 자신의 영명축일로 지낸다. 요컨대 생일에는 내가 축하받기보다 나를 낳아주시고 돌보시느라 애쓰신 부모님을 위해 뭐라도 해드리는 게 마땅한 것처럼 영명축일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신 가톨릭교회,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주보성인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명축일에 맞춰 특별히 더 자선하고 봉사하는 신자들이 많다.

그런데 천주교인들이 그리하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켜서가 아니다. 그것이 ‘좋기’ 때문이다. 필자 식으론 그게 ‘재밌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에서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이 “남의 걸로 생색내기”라 했다. 법인카드로 식사라도 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다. 천주교 식으로는 “모든 것이 다 그분 것”이다. 내 생명부터 시작해서 재물, 물질 같은 것 뿐만 아니라 지식, 따뜻한 마음, 재능, 모든 게 다 받은 것이다. 모든 것이 선물로 받은 것이다. 흔히 우리는 내가 잘해서 뭘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마저 그럴 수 있도록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제 것도 아닌 것으로 나누면서 사랑의 기쁨까지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신은 우리가 ‘제일 재밌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걸 보면 앞서 슬쩍 지나친 천주교의 구원관도 실은 참 간단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거저 받았다 믿고, 감사하며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미 천국을 맛보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신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고 믿으며 그러니 조금도 나눌 수 없다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믿음에 따른 자기존재 규정이 관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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