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웰빙(well-being)의 시대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현명한 인간, 정치적 인간, 언어적 인간, 도구적 인간, 유희적 인간 등 다양한 학명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을 그려보고 그냥 존재가 아니라 실제 존재, 즉 실존을 고민하기도 한다. 인간적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그저 먹이활동만 하며 숨만 쉬면 이어지는 자연생명과는 거리를 둔다. 이렇게 동물 같은 삶, 벌거벗은 삶, '단순한 삶'(Nuda Vita)을 반대편에 두는, 인간적인 삶은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뭔가 덧붙여진 삶이었다. 이 부수적인 가치들이 인간 본연의 존재를 증명하고 문명이라는 성과를 내왔다.
그 반대의 길도 가능할까.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십자군전쟁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가난을 덕으로 칭송하는 청빈을 모토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창설했다.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택한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단순한 삶을 옹호하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사용은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로 이어지는 문명은 비록 그의 헌신을 추앙하더라도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그의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필요한 소비를 피하는 검소와 절약은 오히려 재산을 모으기 위한 방편이 될 뿐이다. 반대가 돌고 돌아 같은 것이 된다. 요즘의 웰빙도 그렇다. 영양이 넘치는 현대인이 온갖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팬데믹 이후 건강에 더욱 신경 쓰게 돼서일까. 가볍게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군살을 없애는 단순한 삶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렇게 덧붙인 것을 줄여나가나 싶었는데 곧바로 제로(zero)산업이 무섭게 커진다. 무(無)칼로리, 트랜스지방 제로, 식품첨가물 프리(free) 등 '빼고 비운' 상품이 쏟아지는 것이다. 며칠 전 별 생각 없이 맥주캔을 들여다봤는데 논(non)알콜에 제로슈거(zero-sugar)다. 그럼 도대체 여기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답은 아마도 무, 나싱(Nothing)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이 전부다. 플루타르코스의 스파르타 이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배고픈 한 남자가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를 잡아 털을 뽑아보니 살이 하나도 없어 탄식한다. "아 나이팅게일아, 넌 정말 목소리 빼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나이팅게일은 꾀꼬리처럼 노래를 잘하기로 소문난 새다. 이 새에겐 목소리가 전부(all)고 정말 그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nothing)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목소리 그 자체(전부)인 나이팅게일과 아무것도 아닌 나이팅게일은 과연 다른가! 아무것도 아닌 무와 전부는 결국 다시 만나 하나가 된다.
꾀꼬리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덧없는 욕망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충만함을 원하는 우리의 욕망이 허무하다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부분들을 우리가 전부로 오해하곤 한다는 것. 결국 돌고 돌면 같은 이야기다. 정신분석이론가 자크 라캉은 우리를 지배하는 욕망의 대상이 항상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특징이나 짧은 순간의 매혹으로 사랑에 빠지곤 하는데 곧잘 상대의 전부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이 전부로 이끄는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그것은, 그래서 절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은 전체가 돼 때로는 절대적 사랑으로, 때로는 절대적 혐오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를 양분한 절대적 신념이라는 것도 비슷한 구조일 듯하다. 각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돼버린 공백을 놓고 대립하고 있지 않은지.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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