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비인도적 탈북민 북송 [아침을 열며]

2023. 11.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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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체류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필자는 윤현(1929~2019)이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1996년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는 단체의 결성을 주도, 오늘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시민연합 결성 초기 북한인권운동가들의 가장 다급한 목표는 국경을 넘었지만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탈북민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었다.

이영환 대표는 25년 전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북한인권운동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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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 회의실에서 '재중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제로 '2023 통일과 나눔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첫 번째 주제 발표자인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가 '최근 중국 탈북민 강제 북송 현황과 송환된 탈북민들이 처한 위험'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체류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필자는 윤현(1929~2019)이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1996년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는 단체의 결성을 주도, 오늘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시민연합 결성 초기 북한인권운동가들의 가장 다급한 목표는 국경을 넘었지만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탈북민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었다. 이들에게 일시적 은신처를 제공하거나 제3의 경로를 거쳐 한국행을 안내하는 일, 무엇보다도 굶주림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들이 생명줄을 놓지 않도록 지원하는 일이 첫 번째 임무였다.

당시 20대 후반의 혈기방장한 기자였던 필자도 지면에 옮기기 어려운 공동의 명분을 위해 윤 이사장과 의기투합한 적이 있었다. 서대문 영천시장 건너편 어둡고 허름했던 사무실에서였다. 엄중한 시기에 엄혹한 일에 나선 그는 단호한 강골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60대 중반을 지나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들었던 탓에 이미 백발이 성성했던 윤 이사장은 마주 앉으면 늘 왜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를 조곤조곤 설명했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1929년생인 윤 이사장은 해방정국에서 조선공산당 후보당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내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신학과에 진학해 평생 '목사'라는 직함을 놓지 않았다. 정치적 암흑기였던 1970년대 초에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창립해 고문 근절과 양심수 지원활동을 벌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국제 네트워크 결성에 나섰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국민포장을,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이러한 경력이 말해주듯 윤 이사장은 정치적 셈법과 이념적 잣대로 인권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항상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자가 영국 유학 중이었던 2008년, 런던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회의에서 우연히 만난 그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던 장면은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10년 전과 다름없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시간을 갖고 평가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중국 내 탈북민들 형편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10월초 중국 내 구금 중이던 탈북민 600여 명의 강제북송 소식의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에도 이들의 북송 소식을 외부에 알린 것은 현지 북한인권 지원단체들이었다. 지난달 24일 중국 체류 탈북민 강제북송 대응방안을 주제로 열린 행사에서 이영환 전환기워킹그룹(TJWG) 대표는 8~9월 중국 내 수감 장소별로 강제 북송된 탈북민 현황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공개했다. 30년 가까이 음지에서 탈북민들을 지원해 온 시민단체들의 노하우와 경험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이영환 대표는 25년 전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북한인권운동에 입문했다. 이어 시민연합의 교육훈련팀장을 지낸 상근 활동가 출신이다. '북한인권운동의 아버지'로 불렸던 윤 이사장은 자신이 한 일은 "광야에 성냥불 하나를 지핀 것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영환 대표도 성냥불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이제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와 국제사회의 몫이 되었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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