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안세영 투혼 ‘나비효과’… 韓 배드민턴에 관심-민간 교류까지[글로벌 현장을 가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2023. 11. 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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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국 교민 배드민턴 클럽 회원들이 지난달 대회를 마친 뒤 함께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이번 대회에는 중국인들도 다수 참가했다. 배드민턴을 국기(國技)로 여기는 중국인들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배드민턴 결승에서 보여준 안세영 선수의 투혼에 감동해 최근 한국 배드민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 클럽에 중국인 가입 문의가 늘고 클럽 간 대회도 많아지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쓰더(四德)공원 배드민턴장에서 만난 중국인 저우위치(周宇奇) 씨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배드민턴 한국 국가대표 안세영 선수(21) 경기를 보고는 푹 빠졌다고 말했다. 저우 씨는 “안세영은 실력도 좋지만 중국 선수에게서 볼 수 없는 강한 투지와 자신감 그리고 겸손함까지 갖춘 완벽한 선수”라며 “그에 대한 관심이 중국에 있는 한국인 배드민턴 클럽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배드민턴을 탁구와 함께 국기(國技)처럼 생각하는 저우 씨는 여느 중국인처럼 어렸을 때 배드민턴을 시작한 수준급 동호인이다. 한국 배드민턴을 한 수 아래로 봐 왔고, 베이징에 한국인 배드민턴 클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7일 안세영과 중국 천위페이(陳雨菲)가 맞붙은 여자 단식 결승전 이후 생각이 변했다.》

배드민턴 최강국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한국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세영이 보여준 투혼이 계기다. 지난달부터 베이징 한국 교민 배드민턴 클럽과 중국인들 교류가 부쩍 늘고 있다. 한중 관계가 썩 좋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배드민턴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中소셜미디어에 안세영 인기

저우 씨와 비슷한 생각인 중국인은 많아 보인다. 중국 최대 쇼트폼(짧은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틱톡의 중국 이름)에는 안세영 관련 영상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중국 선수를 꺾은 한국 선수에게 대부분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안세영이 강한 것은 분명한데 그 강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중국 선수의 우승을 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같은 댓글이 눈에 띄었다. 또 “안세영이 중국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면 좋겠다. 팔로어가 급증할 것”이라고 ‘팬심’을 드러내는 누리꾼도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안세영이 경기 중에 무릎을 다치고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승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안세영을 이기려면 안세영이 다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부상을 당하고도 결국 이겼다”며 실력을 인정했다. 중국 매체들도 안세영의 과거를 조명하면서 “어릴 때부터 보여준 천재적 능력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성공의 길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배드민턴 단식에서 우승한 안세영 선수(왼쪽)와 은메달을 딴 중국 천위페이 선수. 동아일보DB
라이벌 관계인 안세영과 천위페이가 보여준 스포츠맨십도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경기 후 안세영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또 한 번 꿈꾸던 순간을 이루게 됐습니다. 또 다른 꿈을 이루고 빛나도록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소감을 올렸다. 여기에 천위페이가 직접 “당신은 챔피언 자격이 있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댓글을 남긴 것이다. 천위페이는 결승전 후 기자회견에서 “안세영은 훌륭한 선수”라고 말했고, 안세영 역시 “천위페이 선수 덕분에 명경기를 하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이는 불과 18개월 전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와는 180도 달라진 반응이다. 당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선수들은 중국 누리꾼들의 도를 넘은 비난과 욕설을 감내해야 했다. 이는 양국 외교 갈등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대하는 중국인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면서 “중국 당국이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韓中 배드민턴 교류 확산

안세영에 대한 중국인들의 높은 관심은 베이징 한국 배드민턴 클럽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베이징에는 한국인 중심으로 구성된 배드민턴 클럽이 10여 개 있다.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 왕징(望京)에서 가장 오래된 북경배드민턴클럽은 창립 후 중국인을 회원으로 받지 않다가 몇 년 전 일부 문호를 개방했지만 그동안 중국인 회원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인 회원 가입이 늘어나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이 클럽에 가입한 중국인 남성 양지(楊霽) 씨는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 문제와 관계 없이 한국인들과 운동을 즐기는 것 자체가 좋다”면서 “특히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주변에서 한국 클럽 가입 방법을 묻는 중국인 친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안세영 ‘나비효과’다. 이 클럽 중국인 여성 회원 웨이훙위(魏宏玉) 씨도 “한국 배드민턴 클럽에는 중국 클럽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끈끈함이 있다”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한국 클럽과 중국 클럽 간 교류도 많아지고 있다. 베이징배드민턴클럽은 지난달 중국 클럽과 함께 60여 명이 참가한 대회를 열었다. 양측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앞으로도 이런 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중국인 웨이윈샹(魏云翔) 씨는 “최근 한국인과 함께하는 대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면서 “배드민턴을 넘어 한국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한중 간 민감한 사안에 대한 생각 차이를 좁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도 한중 배드민턴 대회를 대표적 교류 협력사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올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치러진 대규모 한중 배드민턴 대회에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문화·스포츠 교류 확대해야”

중국 시장조사업체 바오가오다팅(報告大廳)에 따르면 중국에서 배드민턴 활동을 하는 인구는 약 2억5000만 명이며 배드민턴 팬까지 합하면 5억 명에 이른다. 배드민턴 용품 소비 총액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축구 농구 탁구를 제치고 모든 스포츠 종목 중 1위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꺼이 지원하는 스포츠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배드민턴은 농구 다음으로 2위였다.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충칭 같은 대도시에서는 학교 스포츠 시험 종목에 배드민턴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중국에서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중국 당국은 배드민턴을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경기장을 비롯해 각종 기반 시설 확장을 위한 투자가 발생해 경기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라켓이나 셔틀콕 같은 관련 제품 분야의 일자리 확대까지 기대할 수 있다. 중국중앙연구원 대중화산업연구팀이 올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이저우성 진핑(錦屛)현은 셔틀콕 제작에 사용되는 깃털 공급을 위해 21개 거위 사육 기지를 운영하는데 지난해 이 기지의 1만3000가구 월 평균 소득은 전년보다 2000위안(약 37만 원) 늘었다. 중국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월급이 5000위안(약 93만 원)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소득 증가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이 한국 배드민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중 한국대사관이나 베이징 한국문화원, 재외동포청 같은 한국 유관 기관들이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양국 민간 교류 등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베이징의 한 교민 단체 대표는 “꽤 오랜 시간 경직된 한중 관계가 한 번에 풀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배드민턴을 포함해 각종 스포츠나 문화 교류부터 시작해 점점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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