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안세영 투혼 ‘나비효과’… 韓 배드민턴에 관심-민간 교류까지[글로벌 현장을 가다]
배드민턴을 탁구와 함께 국기(國技)처럼 생각하는 저우 씨는 여느 중국인처럼 어렸을 때 배드민턴을 시작한 수준급 동호인이다. 한국 배드민턴을 한 수 아래로 봐 왔고, 베이징에 한국인 배드민턴 클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7일 안세영과 중국 천위페이(陳雨菲)가 맞붙은 여자 단식 결승전 이후 생각이 변했다.》
배드민턴 최강국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한국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세영이 보여준 투혼이 계기다. 지난달부터 베이징 한국 교민 배드민턴 클럽과 중국인들 교류가 부쩍 늘고 있다. 한중 관계가 썩 좋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배드민턴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中소셜미디어에 안세영 인기
저우 씨와 비슷한 생각인 중국인은 많아 보인다. 중국 최대 쇼트폼(짧은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틱톡의 중국 이름)에는 안세영 관련 영상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중국 선수를 꺾은 한국 선수에게 대부분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안세영이 강한 것은 분명한데 그 강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중국 선수의 우승을 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같은 댓글이 눈에 띄었다. 또 “안세영이 중국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면 좋겠다. 팔로어가 급증할 것”이라고 ‘팬심’을 드러내는 누리꾼도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안세영이 경기 중에 무릎을 다치고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승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안세영을 이기려면 안세영이 다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부상을 당하고도 결국 이겼다”며 실력을 인정했다. 중국 매체들도 안세영의 과거를 조명하면서 “어릴 때부터 보여준 천재적 능력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성공의 길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이는 불과 18개월 전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와는 180도 달라진 반응이다. 당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선수들은 중국 누리꾼들의 도를 넘은 비난과 욕설을 감내해야 했다. 이는 양국 외교 갈등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대하는 중국인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면서 “중국 당국이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韓中 배드민턴 교류 확산
최근 이 클럽에 가입한 중국인 남성 양지(楊霽) 씨는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 문제와 관계 없이 한국인들과 운동을 즐기는 것 자체가 좋다”면서 “특히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주변에서 한국 클럽 가입 방법을 묻는 중국인 친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안세영 ‘나비효과’다. 이 클럽 중국인 여성 회원 웨이훙위(魏宏玉) 씨도 “한국 배드민턴 클럽에는 중국 클럽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끈끈함이 있다”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한국 클럽과 중국 클럽 간 교류도 많아지고 있다. 베이징배드민턴클럽은 지난달 중국 클럽과 함께 60여 명이 참가한 대회를 열었다. 양측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앞으로도 이런 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중국인 웨이윈샹(魏云翔) 씨는 “최근 한국인과 함께하는 대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면서 “배드민턴을 넘어 한국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한중 간 민감한 사안에 대한 생각 차이를 좁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도 한중 배드민턴 대회를 대표적 교류 협력사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올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치러진 대규모 한중 배드민턴 대회에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문화·스포츠 교류 확대해야”
중국 시장조사업체 바오가오다팅(報告大廳)에 따르면 중국에서 배드민턴 활동을 하는 인구는 약 2억5000만 명이며 배드민턴 팬까지 합하면 5억 명에 이른다. 배드민턴 용품 소비 총액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축구 농구 탁구를 제치고 모든 스포츠 종목 중 1위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꺼이 지원하는 스포츠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배드민턴은 농구 다음으로 2위였다.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충칭 같은 대도시에서는 학교 스포츠 시험 종목에 배드민턴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중국에서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중국 당국은 배드민턴을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경기장을 비롯해 각종 기반 시설 확장을 위한 투자가 발생해 경기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라켓이나 셔틀콕 같은 관련 제품 분야의 일자리 확대까지 기대할 수 있다. 중국중앙연구원 대중화산업연구팀이 올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이저우성 진핑(錦屛)현은 셔틀콕 제작에 사용되는 깃털 공급을 위해 21개 거위 사육 기지를 운영하는데 지난해 이 기지의 1만3000가구 월 평균 소득은 전년보다 2000위안(약 37만 원) 늘었다. 중국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월급이 5000위안(약 93만 원)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소득 증가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이 한국 배드민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중 한국대사관이나 베이징 한국문화원, 재외동포청 같은 한국 유관 기관들이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양국 민간 교류 등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베이징의 한 교민 단체 대표는 “꽤 오랜 시간 경직된 한중 관계가 한 번에 풀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배드민턴을 포함해 각종 스포츠나 문화 교류부터 시작해 점점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쇼어링’ 기회의 땅… 멕시코-동유럽 뜬다
- [속보]與, 이준석·홍준표 징계 취소…혁신위 1호 안건 의결
- [단독]尹,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등과 비공개 만찬
- [단독]정부, 300인 미만 일부 업종부터 ‘주52시간’ 틀 깬다
- 당신의 혈압은 안전한가요
-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 띄운 인요한… 김기현-장제원 등 23명 해당… 국힘 술렁
- [오늘과 내일/이철희]이겨야 하는 이스라엘, 버티면 되는 하마스
- 지방에도 ‘메가시티’ 추진… 7개 초광역경제권 만든다
- 與 “메가시티는 제2 뉴타운 전략, 집값 오를것”… 오늘 특별위 발족
- [김도연 칼럼]위험에 처한 국가, 그리고 교육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