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세브란스 수어통역사…업무 마비된 서대문구 통역센터
전국 농인 환자들 다 몰려
작년 의료 통역 요청 1709건
병원서 없앤 후 3배나 늘어
대기 길어 늘 시간 쫓겨 일해
환자는 매번 병력 설명해야
농인(청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 부부 탄닌핑씨(57)와 전길수씨(56)는 부인 탄씨의 당뇨 진료를 위해 7년 전부터 1년에 3~4번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왔다. 경기 김포시에 거주하는 부부가 세브란스를 다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2013년부터 종합병원 최초로 의료 전문 수어 통역사를 채용해 소통 걱정 없이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세브란스는 수어통역서비스를 중단했다. 수어통역사의 부재에 탄씨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는 “의사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눠야 하나, 별생각을 다 했다”고 했다.
세브란스에서 수어통역사가 사라진 지 2년째. 비어버린 ‘의료 통역’의 수요는 서대문구 수어통역센터로 몰려들었다. 수어통역사 4명과 센터장 1명으로 구성된 센터는 세브란스에서 밀려온 요청으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6일과 26일 만난 서대문구 수어통역센터 근무자들은 “세브란스의 자체 수어통역이 중단된 후 몰리는 의료 통역 신청이 과다해 감당이 안 될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사전 예약, 예약 확인, 예약 취소 모두 센터가 돕고 있다. 김솔지 수어통역사는 “주민센터에서의 수급상담과 등본 발급, 동네 병원 진료 등 지역 농인의 요청에다 세브란스로 타지에서 찾아오는 이들의 통역까지 맡아야 하니 업무가 확실히 과중해졌다”고 했다.
과중한 업무량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세브란스에 통역사가 사라진 2022년의 ‘의료통역’ 요청 건수(1709건)는 병원 통역사가 있던 2018년(517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그중 병원까지 동행하는 출장통역 건수는 2018년 379건에서 2022년 1463건으로 훌쩍 뛰었다.
센터 통역사들이 세브란스에 총출동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자가 김 통역사, 탄씨 부부와 함께 세브란스를 찾은 지난달 26일 오후 2시쯤에도 수어통역사 3명이 병원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날은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농인 식도암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환자가 병원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통역사는 급히 병원으로 왔다. “이미 응급실이 다 찼으니 돌아가야 한다”는 병원 측에 “세브란스에서 최근 수술을 했다. 처치라도 해달라”고 즉각 항의한 것도 통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농인들도 불편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전에는 병원에서 통역 매칭이 바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병원 스케줄이 잡히면 영상 통화나 문자로 센터에 알리고, 또 일정이 변경되면 다시 연락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의료 전문성·연결성 측면에서도 농인들은 아쉬움을 느낀다. ‘손이 비는’ 통역사가 그때그때 나서다 보니 환자의 병력이나 상태를 알고 통역하기도 어렵다. 상급병원인 세브란스를 이용하는 농인들은 암환자 등 중증인 경우가 많아 병원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통역 사각지대에 내몰린 농인들이 다른 병원을 찾기보다 세브란스에 통역사 채용을 요구하는 이유다.
지난 5~7월 서대문구 관내 농인들은 병원 앞에서 돌아가며 1인 시위를 벌였지만 병원은 응답하지 않았다. 세브란스 관계자는 “기존의 수어 서비스 요청 창구는 살려두고, 요청이 들어오면 서대문구에 있는 수어통역센터로 연결해 지원을 보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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