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벽엔 무수한 빈대 피…“밤마다 몸 가려워 죽겠다”
서울 동자·중림동 쪽방촌
지난 5월부터 ‘빈대 기승’
“일주일동안 300마리 잡아
에프킬라 뿌리는 게 전부”
주거취약층 지원책 절실
“이게 이번 여름에 빈대 잡아 죽인 자국이에요.”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고시원 총무인 안모씨(55)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고시원 벽지 곳곳에 검은 얼룩이 져 있었다. 방문 위 찢어진 시트지 사이로는 빈대 똥으로 추정되는 검은 알갱이들이 무수하게 박혀 있었다.
고시원 한 곳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구 중림동의 고시원 거주자 한모씨(69)의 방 벽지에는 같은 얼룩이 더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올해 여름에는 일주일 만에 300마리 정도 빈대를 잡았다”며 “저녁만 되면 발끝부터 사타구니까지 타고 올라와 괴로웠다”고 했다. 한씨는 말하는 와중에도 연신 팔다리를 긁었다.
전국 각지에서 빈대 발견 신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특히 주거 취약계층이 빈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동자동·중림동 쪽방촌에는 지난 5월부터 빈대가 기승을 부린 것으로 파악됐다. 지자체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주민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빈대가 처음 발견된 것은 2020년 무렵이다. 매년 빈대가 나타나는 빈도는 늘어났다. 동자동의 한 고시원 사장 A씨(66)는 “3~4년 전부터 빈대가 보였는데 올해가 가장 극심하다”고 말했다. 중림동의 한 고시원 사장인 정모씨(47)는 “중구청이나 지자체에서 코로나 방역만 나올 뿐 빈대 관련 방역은 나온 적이 없다”면서 “보건소에서도 빈대 출현에 대해 뭔가를 알려주거나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중구 관계자는 “지난 6월 취약계층 지원 차원에서 중림동의 일부 지역에 빈대 방제를 한 차례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올해 빈대 관련 민원 4건이 접수됐다. 주거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방역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고시원·쪽방촌 주민들은 개인 방제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동자동 고시원에 거주하는 김모씨(64)는 “빈대 퇴치 약을 사러 약국을 방문했지만 약사가 ‘요즘 빈대 나오는 곳이 어디 있냐’면서 에프킬라를 줬다”고 말했다. 중림동 고시원 사장 정씨는 “2021년 빈대 출몰 때 방제 업체를 불렀지만 건물 방역비로 3500만원을 달라고 해서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 취약계층의 건강권, 생존권이 침해당하는 상태이고 개인이 대응하기 어렵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욱·김세훈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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