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순천하세요”

강경희 논설위원 2023. 11.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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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지난달 28일 흑두루미 360마리가 순천만 습지에 도착했다. 올가을에 날아올 수천 마리 가운데 일착으로 온 선발대다. 지난 3월 25일 순천만을 떠나 중국 쑹화강, 러시아 제야강을 거쳐 하바롭스크 추미칸 습지대에 머물다 7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다. 왕복 5000㎞의 긴 이동 경로를 생생하게 파악하기는 처음이다. 순천시가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흑두루미에게 위치 추적기를 달았는데 이번에 온 360마리 중에 위치 추적기를 단 흑두루미가 포함돼 있었다.

▶2000년 이전에 순천만에 오는 흑두루미는 100마리도 안 됐다. 당시 순천의 시조(市鳥)는 비둘기였다.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1만5000여 마리만 서식하는 멸종 위기종이다. 15년 전쯤 ‘천학(千鶴)의 도시’를 시정 목표로 순천만 습지에 있던 전봇대를 다 없애고 친환경 농법을 한 덕에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찾는 명소가 됐다. 흑두루미 덕에 순천만 농민들은 ‘투잡족’이 됐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친환경 농법으로 쌀농사 짓고, 늦가을부터 겨울철 농한기에는 철새 먹이 주고 지키는 ‘흑두루미 영농단’으로 활약한다.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는 얘기가 있다. 순천은 역사적으로 호남 남부의 행정·문화·교육 중심지였다. 순천고는 판·검사 임용률이 높기로 손꼽히는 지방 명문고였다. 순천이라는 지명은 7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1897년 여수군이 신설돼 순천군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다른 행정구역이 됐지만 원래는 한 뿌리다. 지금도 여수산단의 정규직 1만4000여 명 가운데 넷 중 하나꼴로 순천에 산다. 광양으로 출근하면서 순천 사는 사람도 많다. 순천·여수·광양은 합하면 인구 70만이 넘는 경제권이다.

▶전남·전북을 잇는 전라선, 영남·호남을 잇는 경전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그런지 개방적 성향도 강하다. 민주당 텃밭이지만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아닌 국회의원이 당선되기도 한다. 이전 순천시장도 무소속으로 2번 당선됐다. 현 시장도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때마침 순천 출신의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까지 등장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생태 도시를 목표로 철새 사는 순천만 습지와 사람 사는 도시 사이의 완충 지대를 만든 것이다. 10년 만에 다시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10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을 모아 놀라운 성공을 보여줬다. “순천처럼 하세요”를 줄인 “순천하세요”라는 말이 회자된다고 한다. 이런 변화의 씨앗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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