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의대 증원과 낭비적인 의료체계 혁신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넘어섰다. 2022년 우리나라 GDP 대비 의료비는 9.7%로 OECD 국가 평균 9.3%를 앞질렀다. 지난 수십년간 의료비가 계속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의료비 증가율은 연평균 약 8%로 OECD 국가의 1.7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OECD 국가의 75%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 소득에 비해 의료비를 너무 많이 쓰고 있고, 최근 경제성장률이 2%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의료비가 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의료비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에 우리나라 GDP 대비 의료비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16%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의료비가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것을 국민들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싼 검사와 신약에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한 것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한 것 때문에 의료비를 많이 쓰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이 OECD 국가보다 더 높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병원비 보장률은 60% 중반으로 OECD 국가에 비해 15%가량 낮고, 병원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국민도 OECD 국가에 비해 1.4배 더 많다.
간병과 돌봄에 대한 보장은 크게 떨어진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들여 간병인을 개인적으로 고용해야 하고,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가기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의사와 간호사의 방문 진료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임종을 앞둔 환자 10명 중 호스피스 진료를 받는 사람은 2명밖에 되지 않는다. 선진국 수준으로 간병과 돌봄을 보장하려면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은 매년 10조원은 더 써야 할 것이다.
인구 고령화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노인 인구가 많았던 OECD 국가들에 비해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병에 많이 걸려서 의료비를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비만한 사람도 적고 암도 적게 걸린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병원비를 더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요양병원 간병비나 방문진료처럼 마땅히 정부가 보장해줘야 할 것도 아직 보장을 안 해주는데, 왜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의료비를 더 많이 쓰는 것일까?
OECD 국가에 비해 병상이 3배나 많아 병원들이 입원·수술할 필요가 없는 환자까지 입원·수술을 시켜 낭비되는 의료비는 11조원, 의사 수가 OECD 국가의 절반에 불과해 의사 몸값이 뛰는 바람에 OECD 국가 평균 대비 국민들이 더 부담하는 돈이 10조원, 실손 의료보험과 맞물려 의학적으로 근거도 없는 통증 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로 낭비되는 의료비가 10조원,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이 병원 저 병원 모두 심장병·뇌졸중 환자를 보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환자의 전원과 중복검사 등으로 낭비되는 돈이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이후 방치된 기형적인 의료체계가 ‘밑 빠진 독’처럼 의료비를 낭비하고 있다.
이 같은 기형적인 의료체계는 부족한 의사를 더 부족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중환자를 보던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로 돈을 많이 벌게 된 동네 병의원으로 빠져나가면서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병상을 늘릴 수 있게 허용하니 서울대병원 같은 유명 대학병원들이 6600병상에 달하는 분원을 수도권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개원해 블랙홀처럼 지방 의사들을 빨아들이면 지방 의료체계는 순식간에 붕괴될 것이다. 작은 병원들이 너도나도 심장병, 뇌졸중, 중증 응급환자를 보겠다고 나서면서 이들을 진료할 응급의학과, 심장내과, 신경과 의사가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면서 24시간 365일 당직이 불가능해지니 ‘응급실 뺑뺑이’가 늘어나고 있다.
의사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형적인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대 증원을 계기로 시도별로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 참여하는 ‘필수의료기관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상생과 협력의 지역의료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늘어난 전공의와 교수를 네트워크에 참여한 병원이 함께 활용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병원은 중환자와 응급환자, 동네 병원은 경환자를 진료하면서 상생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병원이 심장병·뇌졸중 환자를 보겠다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심장병 센터와 뇌졸중 센터로 전문화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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