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모두 함께 춘 더 라스트 댄스
스카티 피펜이 말하는 인생
농구, 그리고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에게서 문자가 왔다. "친구, 잘 지내? 나 때문에 화났단 말 들리던데. 얘기 좀 했으면 해서…." 마이클 말이 맞았다. 난 그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ESPN의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때문이었다.
NBA(미국프로농구)의 스타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은 자서전 「언가디드」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그는 왜 조던 이야기를 꺼냈을까. 게다가 '더 라스트 댄스'로 화가 났다니.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1997-98 시즌 시카고 불스의 우승을 함께 이룬 두 사람인데 말이다.
이 책은 NBA에서 17시즌 활약하며 6회 우승을 차지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2차례나 따냈던 스카티 피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펜은 자신을 평생 따라다닌 '조던의 조수'란 꼬리표가 그를 얼마나 움츠러들게 했는지 털어놓으며, "나는 시카고 불스 구단 경영진과 미디어로부터 더 많은 존중을 받아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팀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역할을 감내했는지 전해준다. 또한 필 잭슨 감독, 제리 라인스도르프 구단주, 제리 크라우스 단장과의 일화들을 소개하고, 데니스 로드먼, 토니 쿠코치 등 동료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도 밝힌다.
1994년 뉴욕 닉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 중 종료 1.8초를 남긴 상황에서 감독의 지시를 어기고 코트 밖으로 퇴장해 비난받던 순간을 포함해 NBA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경기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공격과 수비의 중추적 역할로 팀에 헌신하며 '슈퍼스타' 조던을 상대하거나 협력했던 일도 직접 이야기한다.
이 책은 미국서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며 호평을 받기도 한 반면, 좋지 않은 평가와 논란으로 많은 뉴스거리를 낳기도 했다. 대부분의 오해는 마치 피펜이 조던을 비난하기 위해 책을 썼다는 보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피펜이 조던을 최고의 농구선수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감사하고, 추억하는 내용도 많은 부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피펜도 자신과 조던이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콤비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조던의 실수나 태도를 지적하는 만큼 자신의 과오와 부진했던 결과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피펜은 자신도, 최고의 선수인 조던도, 최고의 감독 필 잭슨도 정당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내비친다. "농구는 어떤 한 개인이 하는 경기가 아니라 팀이 하는 경기다." 팀의 승리를 위해선 한사람의 퍼포먼스보다 팀플레이가 중요하고, 팀의 성과는 모두 함께 노력해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라스트 댄스' 1회를 시청하면서 책을 쓰는 게 옳은 결정인 거 같다는 확신을 굳히게 됐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누군가가 한다고 해도 왜곡된 이야기를 할지 모르지 않는가." 그의 말은 "스스로 직접 얘기하지 않으면, 더 큰 힘을 가진 타인의 목소리에 의해 자신의 삶과 생각이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를 품는다. 이 책이 옛 스포츠 스타의 에세이를 넘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유다.
우린 각자 나름의 가치와 기준을 갖고 살고 있다. 이 책은 1인자에게만 주목하고, 서열 정리에 민감한 현대사회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평가되는 우리에게 '남들의 눈이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닐 것'이란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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