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역의료 취약성 극복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방향

기자 2023. 11. 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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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가 취약하고 건강 수준이 나쁜 지역은 상대적으로 노인 인구가 많고 의사 수가 적은데 주로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의사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이런 지역들의 의사 인건비는 더 높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의사가 부족한데 이런 지역들은 의사가 더 부족하고 의사를 채용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 심화는 지방소멸의 위험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의하면 2023년 2월 기준으로 118개 시군구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중 100개 시군구는 모두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이다.

소멸위험까지 걱정할 정도로 취약해진 ‘지역’에서 ‘의료’만 강건하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소아과 오픈 런’ ‘응급실 뺑뺑이’는 필수의료의 부족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되었으나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의 필수의료는 가히 재앙적 수준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경상남도는 18개 시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14개 시군이 응급의료 취약지이고 10개 군을 통틀어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한 명도 없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취약지, 분만 취약지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필수의료의 부족은 사회구성원들의 생명·안전·삶의 질의 위기와 연결되지만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은 중증 외상, 심뇌혈관 질환 등 중증 응급 상황이 바로 사망으로 연결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역의 소멸은 시장의 붕괴와 연관되어 있다. 지역의 위축 때문에 수요도 점차 감소하는데 시장이 버틸 재간이 없다. 기존 의료기관이 폐업하거나 떠나 버리면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력들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민간이 주도하는 보건의료 환경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의료가 취약한 지역의 의사 인건비는 더욱 높은데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면서 민간의료기관이 의사를 충분히 고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의료취약성은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근 ‘필수의료혁신 전략’과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지역 내 필수의료 협력 네트워크 강화, 공공정책수가제와 같이 지역의 의료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들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여 지역 및 필수의료 인력 양성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지역 및 필수의료 유입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밝혔다.

하지만 의대 정원이 확대되더라도 이를 통해서 확충된 의사인력들이 지역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지역의 의료취약성이 해결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수가 지원, 의료사고 부담완화 방안 등의 지역 및 필수의료 유입을 위한 대책들은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있다.

특히 수가를 중심으로 하는 대책은 시장이 확대되거나 최소한 유지될 때 정책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시장이 축소되고 붕괴되는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선 수가와 같은 시장에 의존한 대책 때문에 의사가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적 보건의료체계하에서 발생된 문제가 시장원리에 기반한 대책으로 해결될 리 없지 않은가? 의대 정원 확대 시 지역 인재 선발 비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하나 이를 통해 선발된 의대생이 졸업 후 취약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오해가 있을 것 같아 한마디 하자면 이런 대책들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다. 확대된 의대 정원이 지역의료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인적 자원이 되게 하기 위해선 보다 목적 의식적이고 직접적인 정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공공의과대학, 지역의사제와 같이 지역의료, 필수의료에 종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학생들을 모집하여 해당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력으로 양성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아직 의대 정원 확대의 규모와 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의사단체와의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기왕에 여기까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었다면 양적 확충에 국한된 논의를 이제는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확충된 의대 정원을 지역의료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공적 자원으로 어떻게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또한 공공의료의 강화와 관련된 또 다른 논의의 시작이어야 한다.

정백근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교수

정백근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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