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인천아트플랫폼’의 폭력적 현실

기자 2023. 11. 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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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에 위치한 ‘인천아트플랫폼’은 1종 미술관 및 공공공연장으로 등록된 복합문화공간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세워진 일본우선주식회사와 삼우인쇄소, 금마차다방, 대한통운 창고 등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에는 예술인 창작공간과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역사 보존, 원도심 활성화, 예술 진흥이라는 목적을 안고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지난 10여년간 동시대 예술 창작과 유통, 향유의 중심이었다. 부재한 시립미술관의 소임을 대신해 300만 시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켰고, 창작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그 결과 현재는 국내 대표적 예술 산실로 자리 잡았다. 쇠락하는 중구 구도심을 활성화시킨 일등 공신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주요 문화예술 거점공간으로 설 수 있었던 데엔 국내외 예술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벌이는 ‘레지던시’(Residency)의 역할이 컸다. 비록 1년가량의 짧은 입주 기간에 불과했지만 예술가들에겐 그 자체로 가능성의 장소이자, 지역민을 비롯한 전문가들과의 관계 확장을 이룰 수 있는 건강한 디딤돌이었다. 인사에 관한 내부 잡음 등, 위탁운영기관인 인천문화재단이 모든 걸 잘한 것은 아니나 적어도 당대 예술의 최전선에서 과거와 분별된 태도를 취해왔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인천시는 플랫폼의 레지던시 기능 폐지를 골자로 한 ‘인천아트플랫폼 운영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전국 공모 방식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고, 인천 예술가로 제한된 레지던시만 소폭 확대한다는 게 요지다. 소수의 인천시 공무원과 시 출연기관 직원들로 구성된 이른바 ‘혁신 소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다. 임시 중단이라 해도 정확히 언제 어디서 운영이 재개될지는 알 수 없다. 개방형 창작공간과 입주작가 연계 교육 프로그램 등을 수행하며 이미 시민 주도형 공간으로 변모한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다는 전제 아래 레지던시를 밀어내며, 숱한 예술가와 지역주민들이 구축한 고유생태계를 파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인천시장의 입김을 의심한다. 그리고 해답은 2016년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현 유정복 시장은 당시에도 인천아트플랫폼을 쇼핑과 먹거리, 관광 위주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모르긴 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효과성과 즉각적 반응 측면에서 폐쇄적으로 비치는 예술가들의 공간보다는 먹고 즐기는 대중공간이 가시적 성과나 표의 획득에 중요할 것이다.

문제는 레지던시 폐지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주체인 예술가와 시민은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인천민예총·인천대 조형예술학부 등 30여 단체·기관을 포함한 1000여명의 예술인과 시민들은 지난달 27일 인천시의 독단과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플랫폼 입주작가들 또한 시의 졸속 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 행정부의 입장에선 레지던시 하나 없애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다. 10여년 동안 예술인과 시민의 창작·교육·체험의 축을 담당해온 플랫폼의 핵심 기능이 멈춘다는 건 수백명의 국내외 작가들과 수십만 시민들이 공들여 쌓아온 역사의 중단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우려스러운 건 창작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책자들에 의해 예술공간은 언제든 존폐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폭력적 현실이다. 인천아트플랫폼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존중 없는 시대에선 어디든 예외가 없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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