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이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부터 마지막 순종까지 27대 518년 동안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봐도 드물게 오래 지속된 왕조이다. 하지만 그 국왕 권력이 순조롭게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번의 반정(反正)이 있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1506)과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1623)이 그것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이었고, 인조는 광해군의 조카였다. 조선 왕실의 연속성은 이어졌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두 반정이 정치 쿠데타인 것은 분명하다.
16세기 초반에 일어난 중종반정과 임진왜란 뒤 17세기 전반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아도 그 성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100여년 동안 진행된 조선왕조 내부의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종반정은 그 앞뒤로 나타난 양상이 매우 이념적이었던 반면에, 인조반정은 그렇지 않았다. 정치세력 간 갈등은 있었지만 그것이 이념적 차원으로 심하게 돌출되지는 않았다.
재위 중에 연산군은 “능상의 풍조(凌上之風)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신하들에게 여러 번 말했다. ‘능상’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신하들이 임금인 자신을 능멸한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연산군은 신하들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여러 조치를 취했다. 사간원, 홍문관, 예문관 등을 없애버렸고 언관직 자체를 없애거나 감축했다. 이 기관과 관직들은 조선이 지향한 유교정치 운영의 핵심 구성요소였다. 또, 상소와 상언(上言) 등 여론 수렴과 관련되는 제도들도 축소하고 폐지했다. 연산군 9년에는 궁궐 후원을 확장하면서 성균관 시설을 축소하고, 결국 그 이전을 추진했다. 성균관 터는 임금의 사냥과 연회의 장소가 되었다. 연산군은 자신이 유교 이념 위에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연산군 11년 1월에는 남대문 밖 전생서동(典牲暑洞: 현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일대)을 새 성균관 터로 정했다. 성균관 이전 계획은 다음해 9월 중종반정이 일어나 중단되었다. 연산군은 조선 건국 후 102년 만에 즉위했는데 그사이 조선은 꾸준히 유교화되었다. 연산군은 그 누적된 변화의 결과인 현실을 정면으로 부정했던 것이다.
중종 대에는 강력한 유교정치 이념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파이다. 그가 죽은 후, 조선왕조의 지식인과 관리들에게 조광조는 유교 가치를 수호하고 개혁을 추진했던 인물로 추앙되었다. 광해군 2년(1610)에 그가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공자를 기리는 사당)에 배향된 이유이다. 하지만 그가 추진했던 개혁에는 백성들의 삶과 직접 연결된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유교 이념에 충실한 것들이다. 말하자면 조광조로 대표되는 집단은 유교 근본주의에 가까운 이념을 추구했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중종 대 사림파의 등장은 연산군의 노골적인 반유교적 정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양자는 양극단에 있었지만,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중종반정에 비하면 인조반정은 이념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인조반정은 서인이 중심이 되고 남인 일부가 참여한 사건이다. 인조반정은 광해군 정치에 대한 이념적 반발에서 비롯되었던 것도 아니고, 반정 후에도 이념 추구적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같은 서인 안에서도 한양에 기반한 관료 색채가 짙은 사람들과 지방에 기반한 사림 색채가 짙은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삶의 조건과 생활 환경이 다르기에 같은 가치를 지향해도 생각이 같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화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인조 재위 시기에는 많은 정책적 논의가 있었다. 서로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조에 이어 효종이 즉위하자 조선왕조 최대의 민생, 재정 개혁인 대동법이 성립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 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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