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의 들춰보기-‘개콘’은 청둥오리를 때려 잡을 수 있을까[문화칼럼]

이선명 기자 2023. 11. 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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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PD(왼쪽부터), 김상미C,P 이수경, 개그맨 홍현호, 정태호, 김지영, 조수연, 김지영 김원효, 정범균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별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은 2020년에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쾌거를 이룩했다. 많은 국민들도 내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영화 기생충은 수석으로 사람 머리나 깨버리는 잔혹한 폭력성을 조장한다고 말한다면 여기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의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채 특정 장면을 노골적으로 확대 해석했기 때문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와 예술은 이처럼 한 부분으로 왜곡되어선 안된다.

개그콘서트가 부활한다고 한다. 한국 코미디계의 입지전적인 프로그램이자 온국민에게 일요일이 끝나고 내일이면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오죽하면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밴드가 개그콘서트의 끝을 알리는 이태선 밴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을까.

학창시절 월요일만 되면 하루 전에 봤던 개그콘서트(개콘)의 유행어가 교실을 뒤덮고 있었고 그 유행어로만 수많은 CF와 패러디가 등장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개그콘서트는 서서히 명성을 잃어갔다. 유튜브나 각종 OTT가 등장해 입지를 다지기 전에 몰락해 갔다. 이유는 역시나 간단했다. 흥선대원군에 버금갈 정도의 쇄국정책이 개그콘서트 스스로의 매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KBS2 ‘개그콘서트’ 방송화면



예술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특히 개그에는 더더욱 성역이 없어야 하는데, 개콘은 그러질 못했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개콘에는 ‘제 3세계’라는 코너가 있었다. 박성호, 김대범, 박휘순이 주요 출연자였고, 박휘순은 육봉달이라는 캐릭터로 이런 멘트를 치며 등장했다.

“맨손으로 청둥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번에서 뛰어내린 육봉달입니다.”

2005년 가을부터 2006년 초까지 진행한 코너라 지금의 10대와 20대에겐 매우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30대 이상에겐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멘트다. 중요한 것은 이 청둥오리가 갑자기 ‘북경오리’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출연자였던 김대범씨와 박성호씨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청둥오리가 천년기념물이고 ‘때려잡는 것’이 불법이라 강제적으로 북경오리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청둥오리는 천년기념물은 아니지만, 야생동물로서 수렵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개그맨 정범균, 홍현호, 이수경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별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일부 코너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각을 좀 해보자. 저 멘트 때문에 맨손으로 청둥오리를 때려잡으러 다닐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북경 오리는 마음대로 때려잡아도 된다는 말일까?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뿜 엔터테인먼트’라는 코너에서는 ‘무엇 무엇 하고 가실게요’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그런데 바른 어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정’ 대상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저 유행어를 내뱉을 때, TV 화면 아래에 ‘주의, <~하고 가실게요>는 주체 높임형 선어말어미 ‘–시’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인 잘못된 표현으로, <~할게요/~하겠습니다>가 바른 표현입니다’라는 자막이 붙었다는 것이다. 한창 개그 프로를 보고 있는데 저런 자막이 달리면 개그의 흥이 깨지기는 건 당연하다. 그 옛날 신동엽의 ‘안녕하시렵니까’는 도대체 어떻게 유행어가 되었을까? 모든 코너가 끝날 때마다 ‘개그는 개그일뿐 따라하지말자’라고 외쳐야 할판이다.

과연 개그콘서트는 청둥오리를 때려잡을 수 있을까? 청둥오리도 잡지 못하는데 청중무리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흥선대원군이 지키고 있는 성안의 일이 궁금하지 않다. 성밖에는 수많은 유튜브 채널들이 말 그대로 성역 없는 재미를 내뿜고 있다. 팍팍한 삶에 웃음을 주는 개그맨은 숭고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떻게 하면 웃길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욕 먹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순간 창작은 시작될 수 없다. 다시 시작하는 개콘이 스스로의 성곽을 무너뜨리길 바란다!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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