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 이후 22년 만인데...' 0:10→7:11 희망고문에 홈에서 WS 준우승 위기, 애리조나 미치게 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김병현(44) 시절 이후 22년 만에 월드시리즈(WS)에 진출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홈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우승을 바라봐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하필 할로윈 데이라 홈 관중들이 다양한 복장을 하고 온 가운데 경기력까지 망쳐 좀비가 나오는 미국의 유명 공포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애리조나는 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7전4승제) 4차전 홈 경기에서 텍사스에 7-11로 패했다.
힘은 떨어지지만 베테랑 선발을 내세운 텍사스와 불펜 데이를 선언한 애리조나의 전략 대결에서 홈팀 애리조나가 완패했다. 텍사스 선발 앤드루 히니가 5이닝 4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최소한의 몫을 한 반면, 애리조나는 3회까지 투수 4명을 소모하면서도 10실점 하면서 일찌감치 경기 분위기를 내줬다.
특히 2회 5점, 3회 5점 나눠 실점했는데 모두 2아웃에서 나온 실점들이라 애리조나 팬들을 더욱 미치게 했다. 2회 2사 3루에서 미구엘 카스트로의 폭투로 선취점을 내주더니 이어진 1, 2루에서 마커스 시미언의 적시 2타점 3루타, 코리 시거의 투런포를 맞으면서 순식간에 5실점 했다. 3회 2사 만루에서는 트래비스 얀코스키가 2타점 적시 2루타, 시미언이 좌중월 스리런 아치를 그리면서 사실상 쐐기를 박았다.
미국 매체 애리조나 스포츠는 "이날 경기는 한 편의 슬래셔 영화였고 텍사스는 전기톱을 가지고 있었다. 텍사스는 애리조나의 불펜 데이 시도를 3회 만에 10-0으로 앞서면서 조롱했다"고 촌철살인을 날렸다.
이어 "3회에는 자랑하던 수비에 금이 가며 5실점 했고, 시거는 또 한 번 괴물 같은 홈런을 쳤다. '강타자' 아돌리스 가르시아도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대체 애리조나는 시거에게 치기 좋은 공을 주지 않고 고의사구로 걸러내는 데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졌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적지였던 2차전에서 선발 메릴 켈리(35)의 7이닝 1실점 호투로 시리즈를 1승 1패 균형을 만들고 돌아올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애리조나 스포츠에 따르면 2차전 승리 후 홈에서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기대감에 애리조나 관련 상품이 텅텅 빌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우승 퍼레이드를 믿은 사람도 있었다. 더욱이 경기날이 할로윈데이와 겹쳐 괴상한 복장의 관중들이 차고 넘쳐 기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3일이 지난 11월 1일 현재, 애리조나는 1승 3패로 월드시리즈 준우승 위기에 처했다. 홈구장에서 첫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들겠다는 희망도 사라졌다. 홈에서 열린 3, 4차전을 내주면서 우승을 위해선 반드시 홈 마지막 경기인 5차전 승리 후 'KBO리그 역수출 신화' 켈리의 호투에 기대하는 경우의 수밖에 남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4만 8388명이 모인 홈구장 체이스필드의 분위기는 나빠졌다. 기행도 연출됐다. 몇몇 팬들은 그라운드에 종이 비행기를 날려 장내 아내운서의 주의를 받았으며, 한 팬은 그라운드에 난입해 혼란을 가중했다. 애리조나 스포츠는 "체이스필드는 지난 두 경기 동안 섬뜩할 정도로 침묵했다. 흥분한 인파가 넘쳐났지만, 그 정도와 소음은 크지 않았다. LA 다저스와 엘리미네이션 게임 때와는 사뭇 달랐다"고 설명했다.
경기 후 토리 루블로 애리조나 감독은 "나도 4명의 선발 투수를 갖고 싶다. 그러면 내 삶도 훨씬 쉬울 것이다. 하지만 체스 게임이 될 것이고 난 그런 게임을 즐긴다.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고 여유 있는 답변을 남겼다. 이에 애리조나 스포츠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루블로 감독이 카스트로를 경기에 낸 순간 체크메이트였다"고 비아냥댔다.
애리조나 팬들을 더 미치게 한 것은 막판 추격으로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고문을 한 것이다. 애리조나는 8, 9회에만 라우데스 구리엘 주니어의 스리런 홈런 포함 7점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맥스 슈어저를 대신해 로스터에 합류한 브록 버크가 ⅓이닝 3피안타 3실점으로 대형 사고를 친 것. 크리스 스트라튼(⅔이닝 1실점)-윌 스미스(⅔이닝 2실점)으로 계속해서 안타와 실점을 허용했고 결국 마무리 호세 르클럭까지 등판해야 했다. 그제야 텍사스는 가브리엘 모레노에게 중전 2타점 적시타만을 허용한 채 간신히 11-7 승리를 지킬 수 있었다.
애리조나 스포츠는 "루블로 감독도 뒤늦게 터진 타격과 관중들의 호응에 위안을 삼았다"며 "이번 4차전이 시작할 때 체이스필드에는 많은 좀비와 시체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아쉽게도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 팀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편 1961년 창단한 텍사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파죽의 원정 10연승으로 프랜차이즈 첫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뒀다. 텍사스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원정 전승으로 10연승을 달리고 있는데 MLB.com에 따르면 이는 1937~1942년, 1996~1997년에 걸쳐 뉴욕 양키스가 두 차례 기록한 9연승을 뛰어넘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이다.
정규시즌 90승 72패로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텍사스는 '99승 팀' 와일드카드 1위 탬파베이 레이스, '101승 팀'이자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팀 볼티모어 오리올스, '디펜딩 챔피언'이자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차례로 스윕하고 월드시리즈까지 올라왔다. 7전4승제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3승 1패 우위를 점한 팀의 승리 확률은 무려 85%(78/92)에 달해 이젠 확률로도 텍사스가 유리하다.
하지만 텍사스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그들은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명승부에서 빠지지 않는 2011년 월드시리즈의 명품 조연 역할을 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도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 단 1승, 단 1아웃만 더 잡으면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데이비드 프리즈에게 9회말 역전 스리런을 맞아 시리즈 동률을 허용하고 끝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우승트로피를 넘겨줬다.
그럴 일이 없게 텍사스는 5차전 선발로 '가을 남자' 네이선 이볼디를 내세운다. 이볼디는 이번 가을 5경기에 선발 등판해 텍사스에 무려 4승을 안겼다. 30⅔이닝 동안 36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평균자책점은 3.52,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는 1.04로 압도적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기력으로 홈팬들의 혼마저 쏙 빼놓은 애리조나는 벼랑 끝 위기에서 에이스 갈렌의 호투에 기대를 건다. 올 가을 2승 2패 평균자책점 5.27로 부진한 갈렌은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명예 회복에 도전한다.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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