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한 전·현직 대통령의 입씨름 [36.5˚C]

박경담 2023. 11. 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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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경제를 둘러싼 전·현직 대통령의 입씨름을 접할 때마다 피로하다.

"각자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섬기겠습니다." 상대편 경제를 '반쪽 사실'에 기초해 판단 내리고 자기편에만 다가가는 전·현직 대통령에게 이 문구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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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문재인(오른쪽)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자택에서 지지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1%대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위기 시기의 예외를 제외하고 사상 최초다. 일본보다 성장률이 뒤지는 것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 외에는 처음 있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경제 운용을 정면으로 때렸다.

문 전 대통령이 적었듯 IMF가 최근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은 한국이 1.4%로, 대표적 저성장 국가인 일본 2.0%를 한참 밑돈다. 경제가 찔끔찔끔 커지는 일본보다 낮은 성장률은, 한국이 '저성장 늪'에 가까워졌음을 암시한다. IMF 전망이란 '결과'만 놓고 보면 문 전 대통령 지적대로 경제는 암울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게 있다. 올해 일본의 성장이 엔저 현상에 빚지고 있다는 점이다. 엔저는 일본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저성장은 세계 곳곳에서 겪는 성장률 하락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또 내년에는 한국 성장률이 2.2%로 일본 1.0%를 다시 앞지르기도 한다. 이런 설명을 종합하면 올해 한국 성장률이 일본에 뒤진다는 데서 받는 충격은 한층 수그러진다.

상대 진영의 경제 정책을 겨냥하면서 배경과 맥락을 생략한 채 결과만 앞세우는 건 윤석열 대통령한테서도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나랏돈을 허투루 써 재정을 망가뜨렸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국가부채가 전 정부에서 급증한 건 사실이나, 윤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재정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외면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염두에 두고 나랏빚 증가를 보면 윤 대통령 인식대로 재정이 망가지긴 했어도 수긍되는 면이 생긴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경제를 둘러싼 전·현직 대통령의 입씨름을 접할 때마다 피로하다. 한-일 성장률 역전, 재정 파탄도 알고 보면 이해 가능한 부분이 있는데, 절반만 맞는 사실에 근거해 으르렁대고 있어서다. 이런 식으로 전·현직 대통령이 상대방을 향해 내린 경제 평가는 '메시지'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이 발신한 정치 구호가 닿는 건 각자의 지지 세력일 뿐이다.

사실 경제야말로 역대 정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통합을 구현할 좋은 수단이다. 미래 먹거리를 찾는 산업 정책처럼 보수, 진보 모두 뜻을 함께하는 경제 정책도 많아서다. 전·현 정부 사이에서 생기는 경제 교집합은 서로 이해할 공간을 만들어준다. 때론 전 정부의 유산이 현 정부의 성과로 흐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초과 세수가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이어진 게 한 예다.

정치권이 경제를 매개로 가까워지려면 대통령의 입이 변해야 한다. 경제 평가를 지금처럼 결과만 강조하고 과정을 생략하면 '절반은 틀렸다'는 딱지를 떼지 못할 테다. 기왕이면 상대 진영 경제 노선을 인정하거나, 유산으로 주고받은 정책엔 서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반전도 기대해 본다.

"각자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섬기겠습니다." 상대편 경제를 '반쪽 사실'에 기초해 판단 내리고 자기편에만 다가가는 전·현직 대통령에게 이 문구들을 보낸다. 두 문장은 윤 대통령, 문 전 대통령이 쓴 취임사다.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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