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인생, 하얗게 부서지는 분수에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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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고상하다.
선 하나를 그어도 허투루 긋는 법이 없다.
1990년대 중반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유근택(58·성신여대 교수)은 동양화의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지를 짓이기고 표면을 부숴 가며 그림을 그리는 특유의 기법 덕분에 솟구쳐 올랐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분수 특유의 질감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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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같은 거창한 주제 대신
주변의 풍경들 동양화로 그려
갤러리현대에서 40여점 전시
"익숙한 세상 낯설게 느껴보길"
동양화는 고상하다. 선 하나를 그어도 허투루 긋는 법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여백)로도 심오한 정신세계를 표현한다. 산이든 꽃이든 뭘 그려도 본질에는 고고한 선비정신이 서려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현대인은 동양화에 공감하기 쉽지 않다. 산수화로 표현한 이상향, 대쪽 같은 선비의 절개와 같은 거창한 주제는 우리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유근택(58·성신여대 교수)은 동양화의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관념적 세계 대신 우리 주변 풍경들을 그렸다. 이삿짐을 부려놓은 방이나 새벽녘 창밖으로 내다본 동네 풍경, 마포구 월드컵공원의 사계절, 부서지는 분수 등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 이 시대의 평범한 일상을 그렸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 등 전통 동양화 못지않은 심오한 주제를 담았다.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심도 있는 주제 의식과 감동을 전달하려는 게 그의 의도였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반영’에는 유 작가의 작품 40여 점이 걸려 있다. 그가 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동양화가 가운데 ‘가장 열심히 그리는 작가’이자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꼽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권위 있는 미술상인 이인성미술상을 받은 유 작가는 지난 5월 프리즈 뉴욕에 출품한 작품을 ‘완판’하는 등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꽤나 큰 성과를 거뒀지만, 항상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찾는 ‘도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대부분이 80호 크기를 넘는 대작이고, 이 중 상당수가 신작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 작가는 “그림이 너무 쉽게 그려진다고 느껴지면 주제나 형식을 바꾼다”고 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그려야 발전할 수 있다”면서.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이 간 곳은 분수를 소재로 그린 대작이 모인 지하 1층 공간이다. 그림에 둘러싸인 관람객은 마치 거대한 분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한지를 짓이기고 표면을 부숴 가며 그림을 그리는 특유의 기법 덕분에 솟구쳐 올랐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분수 특유의 질감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유 작가는 “언젠가 부서지는 덧없는 존재지만 그 모습이 아름답다는 점에서, 분수 속 물방울들과 인간의 삶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층 전시장에선 새벽녘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을 그린 ‘창문- 새벽’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 시기 요양병원에서 떠나보낸 아버지의 장례식 날 집에 잠깐 들렀다가 본 광경을 담았다. 유 작가는 “익숙했던 새벽 불빛들이 무한한 우주의 별빛처럼 아련하게 보였다”며 “일상적인 풍경도 보는 사람의 순간순간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삿짐이 잔뜩 쌓인 방을 그린 ‘이사’도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다. 이삿짐을 싸놓고 보니 익숙했던 사물들이 낯설게 보였다는 설명이다. 유 작가는 “전시 제목인 ‘반영’처럼 내 작품에 반영된 세상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들이 익숙한 세계를 낯설고 새롭게 느낄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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