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도 '포닥' 해고…R&D 예산삭감에 '엑소더스' 현실화

박정연 기자 2023. 11. 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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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안과 관련해 대학 연구실에선 인건비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연구실에서 일하는 포스트닥터(박사후연구원)들에게 내년 초까지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동료 교수들이 최근 연구실에서 일하는 연구원에게 '해고통보'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울대에서조차 젊은 인재들이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의 한 달 급여는 400~500만원 정도입니다. 내년에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통장을 깰 생각입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연구실 인원을 유지하겠다는 교수들이 많습니다.”

1일 과학계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안 기조를 발표한 이후 대학교 연

구실 곳곳에서 연구원 인원을 감축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R&D 사업에 투입되는 자금이 줄어들면 현재 연구원 인원을 감당할 정도의 인건비를 수급하기 어렵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아직 예산안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연구원들의 이력서에 공백 기간이 생기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자리를 수소문해야 한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안이 벌써부터 연구 현장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앞서 지난 8월 정부는 내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약 3조4000억원 줄어든 21조 5000억원으로 책정한 예산안을 발표했다. 예산이 20% 가까이 삭감됨에 따라 인건비는 큰 타격을 입는 지출 항목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에 필수적인 장비나 재료 구입비 등을 제외하면 아낄 수 있는 항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도 R&D 예산삭감에 따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수직 감축 규모는 약 1200명 이상으로 예상됐다. 연수직은 박사후연구원, 학생연구원(학·석·박사생), 인턴 등 정규직 연구자가 아닌 연구 인력이다.

대학 교수들은 출연연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출연연의 경우 연구개발적립금 등을 활용해 감원을 하지 않는다는 방편이 마련됐지만 대학의 상황은 또 다르다는 이야기다. 한 국립대 교수는 "대학의 적립금이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예비비를 사용하기 위해선 까다로운 심사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연구실 인건비로 쓰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후연구원들의 유출은 국가 과학기술경쟁력 차원에서 큰 손실이라고 교수들은 입을 모았다. 한 과기특성화대 교수는 “외국 연구시설에 취직하기 위해선 자신의 연구성과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소개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어렵게 이룬 성과를 그대로 떠먹여주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젊은 연구자들은 R&D 예산 감축안이 발표된 이후 자발적으로 해외행을 택하는 연구자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경험이 있는 한 대학 연구원은 “지금도 대학에선 고가인 장비의 수급이 쉽지 않은데 예산이 삭감되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열악해질 것이 당연하다”며 “본인 역시 진행하는 연구 분야에 필요한 장비를 이용하기 위해 내년 유럽 연구기관행을 결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의 R&D 감축안이 연구 현장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대 한 중견 교수는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연구실은 장비 등에 욕심을 내지 않고 비용을 줄여 인력을 유지하면 그만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R&D 예산 감축으로 진짜 피해를 입는 곳은 연구비가 부족할 정도로 연구에 욕심을 내는 연구실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년도 R&D 예산 감축에 대한 과기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와 여당은 사안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정우성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예산심의 과정이 남아있는 가운데 간담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연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며 "젊은 과학자 인건비, 기초연구 투자, 여성, 젊은 과학자 지원 등 현장의 목소리를 놓친 부분이 있는지 면밀하게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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