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비축기지 포화인데 새 저장고도 못지을판···광물수급 차질 우려
배터리 등 첨단산업 경쟁력 위해
핵심광물 공급 뒷받침 시급한데
광물수급 청사진 밑동부터 흔들
이달 예타 안끝내면 예산반영 못해
완공시점도 2026년서 2027년으로
중장기 비축확대 계획 차질 불가피
“핵심 광물을 적시에 공급하기 위한 다양하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로 진행하며 이같이 밝혔다.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희토류·리튬 등 핵심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게 기본 전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핵심 광물 수입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중국의 노골적인 ‘자원 무기화’에 대비할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 2월 핵심 광물 비축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중장기 핵심 광물 확보 전략’을 발표한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다. 당시 정부는 비축 대상 광물을 2022년 19광종 28개 품목에서 2031년 20광종 35개 품목으로 늘리고 비축량 역시 100일분(중희토류는 180일분)까지 확대한다고 공언했다. 실제 정부는 내년 한국광해광업공단에 올해보다 526% 많은 2331억 원을 출자해 리튬 24일분(5.8일분, 이하 9월 기준), 갈륨 60일분(40일분)과 희토류 1년분(중희토류 180일분·경희토류 72일분)을 추가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새만금 핵심 광물 비축 기지’ 건설이 예상보다 늦어져 이런 청사진이 밑동부터 흔들리게 됐다. 광물을 들여와도 보관할 장소가 없는 탓이다.
1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새만금 비축 기지 구축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는 13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예타는 지침상 원칙적으로 9개월 이내로 완료돼야 하고 필요시 18개월까지 연장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예타가 대체로 1년 내에 마무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축 기지에 대한 예타가 유독 길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가령 지난해 9월 비축 기지와 함께 예타가 시작된 해양수산부의 ‘부산항신항 송도 개발 사업’은 전날 예타를 통과했다. 예타가 차일피일 밀리면서 비축 기지 완공 시점도 2026년에서 2027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당초 정부는 2024년 496억 원을 투입해 부지 매입 및 설계에 나서고 2025~2026년에는 2286억 원을 들여 건설을 마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타가 마무리되지 않아 부지 매입 비용마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만약 예타가 18개월을 꽉 채워 내년 3월에 완료되면 예타를 통과하더라도 예산이 없어 사업이 1년씩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최근 산업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는 예타를 실시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측에 가능한 한 이달 내로 예타를 마쳐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 통과되더라도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예산안에 사업 예산을 추가하기 위해 국회에 일일이 협조를 구해야 할 형편이다.
더 큰 문제는 비축 기지 완공이 늦어지면 광물 수급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현재 광해광업공단이 조달청으로부터 임차해 운용 중인 군산 비축 기지는 포화도가 98.5%에 달한다. 내년 예산에 반영된 추가 비축 물량을 들여오면 꽉 차게 된다. 즉 중장기 계획에 따라 비축을 확대하려 해도 내후년부터는 광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보관할 장소가 없는데 추가 비축을 위한 돈을 달라고 예산 당국에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중장기 계획을 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도 KDI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만큼 전문가들이 정확한 방법론에 따라 꼼꼼하게 분석을 실시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한다”며 “기지에 들어갈 20개 광종의 비축에 따른 경제효과는 어떤지 각각 분석해야 한다는 점 또한 조사가 길어지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핵심 광물은 쌀 등 식량처럼 국민 생활에 밀접한 품목은 아니다”라며 “비축에 따른 효과가 특정 산업의 소수 기업에 국한될 수 있다는 점 역시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국가 간 핵심 광물 수급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첨단산업 육성, 서구권의 자체 공급망 구축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광물에 대한 수출통제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은 일찌감치 광물 수급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인 비축 기지마저 이제야 구축하려 한다는 점에서 한참 뒤처진 상태”라고 꼬집었다.
세종=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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