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 칼럼] 尹대통령, 손해나도 기득권에 맞서라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3. 11. 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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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크고 비겁한 기성세대
진입장벽 높여 초과이익 노려
서민과 청년만 번번이 피해봐
말없는 다수를 최우선에 둬야

경제학자들이 늘 머리 앞에 두고 고민하는 질문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동일한 경제체제에서 왜 시간에 따라 경기 흐름이 바뀌느냐다.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경기순환 얘기다. 이른바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 논쟁이다.

두 번째는 동일한 시기에 어떤 나라는 성장률이 높은데 어떤 나라는 왜 낮은가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경제학자에겐 좋은 연구 주제다. 대규모 재정 투입이라는 비슷한 경제정책을 썼지만 최근 나 홀로 독주 중인 미국의 고성장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지난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재밌는 분석을 내놨다. 코로나 이후 미국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유럽은 왜 부진할까. 그는 고용시장에서 단초를 하나 찾았다. 똑같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다. 유럽은 고용주에게 자금을 지원해 근로자들 급여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일거리가 없더라도 기존과 동일한 일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게 도왔다. 반면 미국은 대규모 해고를 허용하면서도 실업수당을 확대해 근로자를 보호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근로자 소득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미국은 완전고용에 진입하며 유럽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뭐 때문일까. 유럽과 달리 미국은 당장의 고용안정성보다는 시장 변화를 염두에 둔 고용유연성에 방점을 뒀다. 크루그먼의 해석은 이렇다. 코로나는 소비 패턴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경제체제를 크게 바꿔놨는데 미국식 고용유연성 확보 정책이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실업률이 크게 뛰어올랐지만 새로운 체제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강력한 경제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유럽보다도 고용안정성에 더 집착하는 한국에선 쉽지 않은 정책이다. 강력한 양대 노총이 버티는 한국 사회에선 대기업 노조원만 되면 정년 보장은 거의 확실하다.

사실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 경직성은 사교육 열풍과도 맞닿는다. 한국은 사교육비를 쏟아넣더라도 자녀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진학하면 평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다. 명문대를 졸업할수록 대기업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고, 입사만 하면 일을 못해도 해고 걱정 없이 정년까지는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직원, 성과가 너무 저조한 직원 입장에서도 다른 직업으로 바꿔보려 해도 쉽지 않다. 버티는 게 낫고, 그게 가능한 구조다. 또한 휴직으로 빈자리에 잠시 들어와서 일했던 비정규직 직원이 훨씬 뛰어나도 어쩔 수가 없다.

최근 논란이 됐던 의대 정원 확대도 마찬가지다. 의사는 되기만 하면 커다란 경쟁 없이 고소득을 누릴 수 있다. 정원 확대는 경쟁 격화를 의미하고, 나눠 먹어야 할 파이 축소로 이어진다. 2006년 이후 정원을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하도록 의사집단이 맞섰던 배경이다.

어느 순간 한국 사회는 이처럼 목소리가 큰 특정 이익집단에 함몰되면서 스스로 유연성을 잃기 시작했다. 노조가 만들어놓은 장벽에 청년 일자리가 막혔고, 의대 정원 동결로 경쟁이 제한된 의료계는 사교육의 블랙홀이 됐다.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가 각종 진입장벽을 구축해 경쟁을 제한한 결과 그들만의 안정적인 초과 이득을 누리는 셈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득권 세력의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가 청년의 미래를 누르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현장을 찾아가 "서민들이 정치과잉의 희생자"라면서 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겠다. '말 없는 다수의 국민만 바라보는 정책'을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 당장은 손해보더라도 꼭 해야 하는 정책을 밀어붙여야 정통 보수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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