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뒤주에 들어간 냉장고
지우헌은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대표적인 한옥. 지난달 27일 그곳을 방문했더니 2층 뒤주 안에 냉장고와 와인셀러가 들어가 있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뒤주와 냉장고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뒤주는 예로부터 곡식을 담아두는 보관함이었다. 그 역할을 오늘날 냉장고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순간 왜 삼성전자가 아트 디자인 그룹 슈퍼포지션과 협업한 가전제품을 선보이면서 주제를 '타임리스'로 했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타임리스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을 뜻하는 말. 세상에 수없이 많은 것들이 변해가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었다. 뒤주에서 냉장고로의 변화는 너무나 커 보이지만 먹을거리를 저장한다는 본질은 변한 게 없다.
그러고 보니 뒤주 이전에는 토기가 있었다. 선사시대 인류는 토기에 먹을거리를 저장했고, 삶고 끓이는 요리도 했다. 토기의 저장 기능이 분리돼 뒤주로 전해졌고 냉장고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토기의 요리 기능을 다시 뒤주에 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지우헌 1층에 놓인 뒤주가 그랬다. 인덕션이 들어가 있었다. 본질을 보면, 뒤주와 인덕션 냉장고를 섞는 게 이상하지 않다.
뒤주 뒤로는 11폭 병풍이 놓여 있는데 그중 3폭은 냉장고나 냉동고였다. 겉 색깔이 백사장 같다. 반면 나머지 9폭은 흰색 파도가 물결치듯 디자인됐다. 물결이 끊임없이 모래를 밀어 백사장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려면 무릇 이렇게 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했다. 파도가 끊임없는 물결로 백사장을 조각하듯, 가치 있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 타임리스한 추구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다. 그러고 보니 삼성전자 제품의 브랜드명이 '인피니트'다. 끝이 없다는 뜻이니 예술의 경지에 이른 제품을 만들겠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이튿날이 전시 마지막 날이라고 했지만 주제가 타임리스 아닌가. 그 본질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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