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외면 시대…대학가에 템플스테이 세운 스님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3. 11. 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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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건축·경영학 전공한 유학파 준한 스님
18년전 교통사고 후 출가
홍대거리에 참선놀이터 세워
청년들 명상 '핫플레이스'로
불안한 청년들에게 길 제시
"소백산·태백산에 분점 만들어
외국인에게도 불교문화 전파"

젊은 층이 갈수록 불교를 외면하는 시대에 산중 사찰이 아니라 도심 속 공간을 파고든 이색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MZ세대 포교의 대명사 준한 스님(45)이 '힙한' 홍대거리에 만든 글로벌 참선 놀이터 '저스트비(JustBe) 홍대선원'이 그것이다. 준한 스님은 현각 스님의 제자이자 미국 워싱턴대에서 건축과 경영을 전공한 '유학파'다.

홍대선원은 지하 1층~지상 6층으로 이루어진 명상 게스트하우스다. 베드는 50여 개이고 각종 명상과 참선이 이루어지는 법당도 있다. 월세만 1350만원이다.

스님은 "불교신자인 건물주가 코로나19 기간에 공실로 있던 건물을 임대해주면서 특별한 명상 공간이 탄생했다"며 "소문이 나면서 국내뿐 아니라 미국·스페인·프랑스·싱가포르 등에서 저스트비 2호점, 3호점을 만들자고 연락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들과 청년 재가자들이 함께 먹고 자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시스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명상과 요가, 친환경, 채식 등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데 이들이 갈 곳이 없었죠."

6층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모델링을 위해 1년간 계단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리며 짐을 날랐다. "절 운영만으로도 힘든데 매일 수십 명의 요사체(숙소) 청소까지.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요. 자원봉사를 하는 청년들과 같이 사는 것도 진짜 수행입니다."

스님의 꿈은 도심 속 템플스테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홍대선원을 기점으로 소백산과 태백산 등에 분점을 만들어 백두대간 평화의 순례길을 만들고 싶어요. 외국인들이 한류 덕분에 한국을 엄청 찾고 있는데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정신문화를 제대로 알리자는 거죠."

수덕사에서 출가한 그의 법납(출가 나이)은 벌써 18년이다. "대학 2학년 재학 중에 큰 교통사고를 냈어요. 함께 타고 있던 친구 한 명이 중상을 입었어요. 죄책감과 함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죠."

극한의 괴로움 속에 그는 휴학계를 내고 귀국해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외국인 스님들과 함께 하안거 면벽 수행을 했다. 당시 화두는 '모든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괴로움의 시작은 어디인가'였다.

"참선 수행 중 깊은 고요함 속에 들었을 때, 모든 걱정과 두려움이 꿈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어요. 자기가 스스로 만든 번뇌에 속아서 괴로워했다는 것을."

그렇게 수행을 마치고 하산한 뒤 미국에서 온 메일을 확인했다. "기적이 일어났어요. 코마 상태였던 친구가 깨어났고, 몇 달간 기적 같은 재활운동으로 병원에서 다큐 영상을 만들어 미국 전역의 재활센터에 보내졌다고 해요. 수억 원이 넘던 재활 비용도 병원에서 부담해주기로 했지요."

부처님께 단단히 발목을 잡힌 그는 그때부터 '여여한' 재가자의 삶을 꿈꿨다. 혼자 세계 일주를 하며 미국에서 명상센터를 세웠다. 그 당시 현각 스님의 '살아있는 금강경' 번역 의뢰가 들어와 처음 '금강경'을 깊게 읽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업이라도 내 마음의 그릇을 더 키우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모든 번뇌가 꿈인 줄 알았으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머리로 깨달은 것을 몸으로 체화해야 하지요. 남아 있는 습(習)이 있고, 경계에 부딪히면 실제로 마음이 흔들리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만행을 하며 여러 경험과 상황을 접하는 것입니다. 출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한 방편이자 세상으로 돌아와 널리 회향하기 위한 것이죠."

[이향휘 선임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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