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깁슨, 추상의 붉은 커튼을 열어 젖힌다[김창길의 사진공책]
왼쪽 사진은 붉은 커튼 두 개가 보이는 컬러 사진이다. 오른쪽은 얼굴 표정이 다른 두 개의 얼굴 조각상이 찍힌 흑백 사진이다. 그리 유사한 점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진.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두 개의 피사체와 ‘ㄴ’자 구도의 검은 그림자가 두 사진에 존재한다는 점. 이렇게 상이한 사진들을 둘로 조합하는 형식을 ‘딥틱’이라 한다.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역사가 깊다. 중세의 종교화에 쓰였으며,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발견되는 형식으로 지금의 노트북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그림으로 제작됐다. 최근에는 얼굴없는 화가 뱅크시의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녀’에도 사용된 방식이다. 사진작가 중에서는 랄프 깁슨이 주목했던 형식이다. 두 개의 이미지 사이를 메우는 것은 관람객들의 상상력이다.
랄프 깁슨의 사진전 <Political Abstraction>이 내년 4월까지 부산 해운대구의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2022년 10월 1일 개관한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의 세 번째 전시다. <Political Abstraction>은 <모노(MONO)> 시리즈에 이은 두 번째 디지털 작업이다. 딥틱으로 구성된 두 개의 사진에는 촬영 장소와 날짜 등 어떤 정보도 없다. 추상화된 두 사진의 의미는 사진전을 관람하는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11월 3일 오후 3시에 랄프 깁슨의 ‘아티스트 토크’가 열리고, 5시에는 오프닝 리셉션이 열린다. 내년 1월에 동명의 사진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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