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든 떠난 필리델피아, 위기와 기회 사이
트레이드 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던 제임스 하든(34‧196cm)이 결국 원하던 팀 LA 클리퍼스로로 이적한다. 그는 지난 시즌 이후 소속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었다. 단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정도로 화가 나있던 하든은 대놓고 트레이드를 요구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행선지로 클리퍼스를 지목했다.
클러퍼스는 하든은 탐이 나지만 핵심선수들을 건드리면서까지 트레이드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었고 다른 팀과 협상을 하던지 아님 한동안은 필라델피아에서 계속 뛸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팀 분위기를 해치는 하든이 오래 있을수록 필라델피아도 손해였다.
결국 꾸준한 물밑협상 끝에 하든을 클리퍼스로 보낼 수 있게 됐다. 필라델피아는 하든을 비롯, P.J. 터커, 필립 페트루세프를 LA 클리퍼스로 이적시켰다. 반대급부로 받는 것은 마커스 모리스, 니콜라스 바툼, 로버트 코빙턴, 케년 마틴 주니어, 2028년 1라운드 지명권(비보호), 2029년 1라운드 지명권 스왑 권리, 미래 2라운드 지명권 2장이다.
클리퍼스는 기존 폴 조지, 카와이 레너드, 러셀 웨스트브룩에 하든까지 추가됐다. 해당 선수들이 건강하게 시즌을 소화한다면 충분히 우승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필라델피아는 원투펀치의 한축을 잃었다. 리그 최고의 선수 조엘 엠비드(29‧213cm)를 중심으로 실속파 선수들이 남아있지만 워낙 슈퍼팀이 많은 현실에서 대권도전은 쉽지않아보인다.
필라델피아로서 최악의 상황은 엠비드 마저 떠나는 시나리오다. 전성기에 오른 엠비드는 우승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전력보강은 커녕 자신이 공수에서 고군분투해야만 되는 입장에 직면한지라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엠비드가 마음을 굳게 먹고 니콜라 요키치처럼 팀과 함께 성장하며 우승까지 내달릴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분위기다.
필라델피아는 NBA를 대표하는 정통의 명가 중 하나다. 1946년 창단해 1949년부터 NBA에서 뛰었으며 올해로 74주년째다. 현재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 신흥명문에 밀려버린 상태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카고 불스, 보스턴 셀틱스, LA레이커스와 더불어 4대 명문으로 불렸다.
오랜 역사와 더불어 스토리가 풍부한 팀을 꼽으라면 필라델피아가 빠지지 않았다. 파이널 우승 3회(1955, 1967, 1983), 컨퍼런스 우승 5회(1977, 1980, 1982, 1983, 2001)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긴 역사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파이널 우승같은 경우 1983년이 마지막인지라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해에 태어났던 아이들은 불혹의 중년이 됐다. 그런만큼 홈팬들 중에는 필라델피아의 파이널 우승을 못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쟁쟁한 영구결번 레전드들도 적지 않게 배출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도 많다. 고 돌프 세이스는 시라큐스 내셔널스 시절부터 필라델피아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까지 15년간 팀을 지킨 50년대의 에이스다. 1955년 프랜차이즈 첫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다.
고 할 그리어 또한 시라큐스 시절부터 1973년까지 필라델피아에서만 뛰며 원클럽맨으로서 활약했다. 안정적인 슈팅력을 앞세운 득점력이 좋은 공격형 듀얼가드였다. 고 모제스 말론같은 경우 5년밖에 뛰지 않았으나 필리델피아 유니폼을 입기 무섭게 파이널 MVP와 함께 팀에 우승을 안겨줬다.
고 윌트 체임벌린은 설명이 필요없는 역대 최고의 괴물 센터 중 한명이다. 고 빌 러셀과 함께 팬들 사이에서 '고대 괴수'로 불렸을 정도다. 팀 성적에서는 러셀에게 밀리지만 순수한 개인의 파괴력으로는 체임벌린 쪽이 더 강했다는 평가다.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1962년 3월 2일 뉴욕 닉스전에서 세운 100득점 기록은 현재까지도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포워드 빌리 커닝햄과 바비 존스, 줄리어스 어빙 그리고 가드 모리스 칙스는 1980년대 전성기를 함께했던 인물들인데 그중에서도 어빙은 필라델피아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닥터 J'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는데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이전 리그를 대표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강력한 빅맨이 각팀의 중심이던 당시 스윙맨으로 뛰면서 현란한 움직임과 다양한 덩크슛을 통해 팬들을 끌어모으고 승리를 챙겼다. 한창 TV가 보급되던 시기에 파워와 기술이 결합된 어빙의 슬램덩크쇼는 어린이 팬들을 설레게 했다. 마이클 조던 역시 자신의 어릴적 우상으로 여겼던 선수다.
'날으는 냉장고'로 불렸던 찰스 바클리가 데뷔해서 전성기를 보낸 팀 또한 필라델피아다. 당시 팀에는 노장이기는 했지만 어빙에 더해 모제스 말론, 모리스 칙스, 바비 존스 등 기량과 성실함을 두루 갖춘 선수들이 즐비했다. 바클리는 이들에게서 프로 정신을 배우고 기량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다만 어빙, 말론 등이 사실상 커리어의 끝자락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그들이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바클리가 함께했다면 필라델피아는 1~2회 정도 더 우승을 추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단신 득점왕으로 유명한 앨런 아이버슨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필라델피아를 이끌며 NBA의 아이콘으로 군림한 선수다. 특히 2000~01시즌은 아이버슨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로 불린다. 올스타전 MVP,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것을 비롯 팀을 파이널까지 진출시킨다.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너무 강했다. 샤킬 오닐을 중심으로 고 코비 브라이언트가 뒤를 받쳤던 LA 레이커스는 파이널까지 올라오는 동안 1패도 없었던 무적의 팀이었다. 그런 팀에게 아이버슨은 원맨쇼를 통해 1차전을 승리로 가져가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현격한 전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