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미국 유학한 주요섭 “귀족 쌍놈이 없다. 돈이면 그뿐”

임지선 기자 2023. 11. 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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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명예교수 ‘우라키와 한국 근대문학’
1920~30년대 미국의 조선인 유학생 잡지
1924년 미국 에번스턴 소재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개최한 제2차 북미조선학생총회 집회. 소명출판

1920~1930년대 미국 땅을 밟은 20~30대 젊은 조선인 유학생들의 시와 소설에는 어떤 문장이 담겼을까.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당시 미국으로 유학 간 조선 청년 단체 ‘북미조선학생총회’가 한국어로 낸 문예지 ‘우라키(The Rocky)’에 실린 문학 작품을 비평하는 책 <우라키와 한국 근대문학>(소명출판)을 발간했다. 김 교수의 전작 <아메리카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 미국 유학생 단체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우라키와 한국 근대문학>은 당시 문예지에 실린 텍스트를 해석·분석하고 한국 근대문학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초점을 뒀다. 김 교수는 “이 잡지가 없었더라면 한국 근대문학은 조금 뒤늦게 탄생되었거나 같은 시기에 탄생되었더라도 지금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발전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미조선학생총회는 1924년 5월 일리노이 에번스턴에서 열린 제2차 미주유학생대회에서 한글 문예지를 발간하기로 결정했다. 문예지 ‘우라키’는 1925년부터 1936년까지 7호가 발간됐다. 학생총회 회원들이 어렵게 마련한 300달러가 자본금이 됐다. 편집은 미국에서 직접 했지만, 인쇄·출간·판매는 미국이 아닌 식민지 조선에서 맡았다고 한다. 종교·철학·인문학·자연과학도 담겼지만 호마다 문학과 예술분야의 글이 꼭 실렸다. 김 교수는 “서간문 형식을 빌린 자서전이나 다분히 문학적 성격이 강한 인물전기 등 새로운 문학장르를 조심스럽게 탐색하기도 했다”면서 “창작과 번역은 이 잡지가 맺은 소중한 열매”라고 말했다.

저자는 다소 낯선 이름인 ‘우라키’라는 제호부터 주목한다. 여기서 ‘우라키’는 로키산맥을 한국어로 표기한 것. ‘우라키’ 2호 편집 후기는 “북미의 유학하는 우리 학생들의 험악한 노정을 우라키라는 말이 잘 묘사한다”고 전한다.

‘우라키’에 실린 글의 특징 중 하나는 계몽적이라는 점. 창간사에는 “가장 살진 암소의 아직도 다스한 첫 잔의 젓”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김 교수는 “고국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주는 ‘젖’이란 조국 해방을 앞당길 수 있는 데 도움을 주는, 서구 문물에 관한 식견과 지식을 말한다”고 해석했다.

다양한 문학 장르 중에 ‘시’가 가장 많이 실렸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 등을 담은 서정적 작품과 격앙된 목소리로 일본 식민주의나 사회악에 맞서자는 작품까지 스펙트럼도 넓었다.

예를 들어 이정두의 ‘동지들에게 보내는 시’는 투쟁에 앞장서자고 부르짖었다. ‘동지여!/우리 시는 아름다운 노래/그대들에게 보내는 편지다!/늦은 저녁/ 열풍은 거리에 나무를 흔들고/ 우리 손은 도시의 큰 길에 화약을 묻는다’ 저자는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열풍일 수도 있고, 당시 거셌던 사회주의 열풍일 수도 있다”고 봤다.

<우라키와 한국 근대문학> 소명출판
북미조선학생총회가 발행한 문예지 <우라키>. 미국 로키산맥의 기상을 표방해 제호를 지었다. 소명출판

‘우라키’에 실린 단편소설은 총 5편이었다. 주요섭을 빼고는 무명 작가였다. 저자는 “무명작가였지만 몇십년 뒤 ‘이주문학’ ‘이민문학’이 오는 길을 미리 닦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라키’ 2호에 실린 장성욱의 단편 ‘모르는 나라로!’는 ‘나’라는 1인칭 서술 화자가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김슌믁’이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김슌믁’의 하와이 노동 이민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저자는 “미국 유학생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작품”이라며 “작품의 창작과정을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타 픽션’에 속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주요섭도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 ‘우라키’에 단편소설과 산문을 실었다. 그가 ‘우라키’ 3호에 기고한 ‘내 눈에 빛왼 얭키’는 미국 도착한 지 석 달이 지나 쓴 미국 인상기다. 주요섭은 미국을 두고 ‘귀족 쌍놈이 없다. 그저 돈이면 그뿐이다’라고 썼다. 여객선에서 1등석을 구입한 사람은 미국 입국이 쉽고, 3등석을 구입한 사람은 천양지차의 대접을 받은 것을 보며, 미국의 황금 만능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여성 필자도 있었다. ‘극성’이라는 필명의 필자는 <‘김활란씨 박사논문 촌살’과 ‘박인덕 여사 이혼에 대한 사회비평을 읽고’>, 수필문 ‘짹손 감옥을 방문하고’라는 두 글을 기고했다. 김 교수는 이 필자를 미시간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김메리라고 했다. 김메리는 1948년 동요 ‘학교종이 땡땡땡’을 작사·작곡한 이다. 그는 김활란과 박인덕을 ‘나폴레옹’이나 ‘레닌’에 빗대며 조선의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가라고 평가하는 글을 썼다.

문학 번역도 ‘우라키’에서 빛나는 부분이다. 김 교수는 교육행정가로 유명한 오천석이 번역한 조이스 킬머의 시 ‘나무’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주 훌륭하다”며 “무엇보다 한자어를 배제하고 순수한 토박이말을 살려 옮기려고 애썼다”고 했다. 일례로 ‘earth’를 대지가 아닌 땅이라고 번역했다.

책을 시작하며 김 교수는 “1980년대 초 미국 유학을 마치고 나서부터 스승과 선배들의 눈부신 활약성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며 “그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셈”이라고 썼다.

<우라키> 창간호 목차로 편집위원 명단이 적혀 있다. 소명출판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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