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돌봄 잠시 쉬세요" 중증질환 자녀 둔 부모 위한 125억짜리 센터

정심교 기자 2023. 11. 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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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1일 개소
국내 첫 독립형 어린이 단기돌봄의료시설로 자리매김
넥슨이 100억, 복지부가 25억 지원…수가도 반영키로
자가 호흡·이동 등 못하는 만 24세 이하 자녀 대상
서울대병원이 1일 개소한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내 입원 병동 내부./사진=정심교 기자

뇌가 손상당했거나 퇴행하는 질환, 근력이 점차 약해지는 근육병 등 중증질환을 앓는 소아청소년 환자들은 치료 끝나도 장기간 또는 평생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거나 경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 식이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워라밸'은 남의 얘기다. 24시간씩 꼬박 자녀 옆에 붙어있느라 개인의 삶을 포기한 지 오래다.

이런 부모들이 안심하고 휴가를 낼 수 있게 돕는 국내 최초의 '독립형' 어린이 단기돌봄의료시설이 생겼다. 1일 서울대병원이 개소한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다.

현재 인공호흡기 등 기계에 의존해 24시간 간병 돌봄이 필요한 중중 소아청소년 환자는 전국에 4000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지금껏 국내에는 이들을 위한 어린이 전문 단기 돌봄 의료시설이 전무했다. 기계에 의존하는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의 가족은 퇴원 후에도 가정에서 잠시의 쉼도 없이 24시간 의료 돌봄을 해야 했다. 이들 가족에게는 단 하루라도 아픈 아이를 맡기고 정신적·육체적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센터 내에는 자가 이동이 어려운 환아를 위한 '샘물 목욕실'을 마련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센터에 입원한 어린이 환자를 의료진이 돌보고 있다. 이 환자는 자가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에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는 이런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를 단 며칠 동안이라도 맡아 안전하게 돌봄으로써 환자 가족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기회를 주기 위해 서울대병원과 보건복지부, 넥슨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힘을 모았다. 이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넥슨재단이 기부금 100억원을, 복지부가 국고지원금 25억원을 보태 총 125억원이 투입됐다.

이 센터를 건립하기까지는 꼬박 5년이 걸렸다. 2018년 7월, 중증 소아청소년 가정의 부모에게 쉼이 없다는 사실을 접한 넥슨재단이 서울대병원과 논의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2020년 10월 서울대병원 인근 종로구 원남동의 건물 부지를 매입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첫 삽을 뜨며 완공한 이 센터는 연면적 997㎡(302평)의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탄생했다. 센터엔 중증 소아 단기 입원용 16개 병상(2인실 4실, 4인실 2실)뿐 아니라 놀이치료실·상담실 등이 마련돼 환자와 환자 가족(어린이·부모 등)에게 치료·휴식을 지원한다.

이곳에 입원하려면 △만 24세 이하 소아청소년이면서 △스스로 이동할 수 없거나 △의료적 요구(인공호흡기, 산소 흡입, 기도 흡인, 경장 영양, 자가 도뇨, 가정 정맥 영양)가 필요한 경우 △급성기 질환이 없는 안정기 상태 등 4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해당 환자 중 사전 외래를 통해 입원할 것을 지시받은 환자만 서울대 어린이병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후 이용할 수 있다. 입원 가능 기간은 1회 최대 7박 8일, 연간 최대 20박 21일이다.

환자의 어린 가족이 센터에 방문하면 음악·놀이 등 관련 프로그램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사진은 센터 내에 넥슨재단이 제공한 인형들이 진열장에 보관된 모습이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 센터는 '돌봄 지원'을 뜻하는 '리스파이트 케어(respite care)'란 개념이 최근 세계 의료계에 활발히 적용된 사례를 참고했다고 한다. 김민선(소아청소년과 교수) 넥슨어린이 통합케어센터장은 "돌봄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해외 사례를 조사했더니 많은 기관에서 1회에 7일, 연간 14~20일간 돌봐주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를 참고해 입원 일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센터엔 24시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하며, 중증 소아총소년 환자에 대한 전문지식과 술기를 충분히 갖춘 간호인력을 배치해 안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복지부와 협의해 수가도 책정됐다. 본인부담금은 의료비 총액의 5%이며, 사회복지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센터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도토리하우스'란 별칭도 지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이 중증 환자를 위해 '꿈틀 꽃씨'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씨앗에서 출발해 열매가 된 도토리의 의미를 담았다.

(왼쪽부터) 김민선(소아청소년과 교수) 넥슨어린이 통합케어센터장,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최은화 서울대 어린이병원장이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센터 개소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가정에서 24시간을 꼬박 옆에서 돌보느라 휴식 시간이 전혀 없고, 휴식하더라도 조마조마해야 했던 부모에게 단 며칠만이라도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정신적·육체적으로 휴식하며 재충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늘은 국내 최초의 독립형 리스파이트 케어 센터가 문을 여는 대한민국 의료 역사상 뜻깊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넥슨재단 김정욱 이사장은 "센터 개소가 전국의 중증 질환 환아들과 지속되는 간병으로 지친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미래인 어린이를 향한 진심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후원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인근 종로구 원남동에 자리잡은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건물 전경. /사진=정심교 기자

한편, 소아희귀질환 치료에 있어 세계적인 임상연구 인프라를 보유한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전국 희귀질환 진단·치료 네트워크의 중추로서 희귀질환 환아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2017년 한국형 미진단 질환 프로그램(UDP)을 착수한 이래 254가지 유전질환을 진단하는 첨단 게놈 진단 플랫폼을 구축하고, 유전자 분석에 기반해 희귀질환인 모야모야병의 표적치료법과 골형성부전증 수술 기법을 고안해 내는 등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우수한 성과는 최근 네이처지(Nature)에도 소개된 바 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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