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김정주 10년전 약속 지켰다…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문열어
서울 종로구 지하 1층, 지상 4층, 총 16개 병상
넥슨 재단 100억원 기부하면서 시작
별칭 ‘도토리하우스’ “아이들이 참나무 되게”
“개인의 삶이요? 그런 건 감히 생각지도 않아요.”
서울대병원이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 가족을 위해 설립한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넥슨 어린이센터)’가 1일 개소한다. 이는 이날 입소하는 뇌 병변 소아 환자 정민수(가명) 군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올해 다섯 살인 정군은 태어날 때 입은 뇌 손상으로 온몸이 마비돼 누워만 지낸다. 스스로 호흡이 힘든 정군은 가정용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고, 배에 뚫린 구멍으로 식사한다.
머리맡에는 가래와 침을 뽑아내는 흡입기가 설치돼 있다. 엄마는 민수의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다. 수시로 가래를 빼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뒤집어줘야 한다. 인공호흡기가 잠깐 멈추기라도 하면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민수에겐 올해 7살인 형이 있지만, 한 번도 놀이동산에 가 본 적이 없다. 민수 어머니는 " ‘캠핑 가 보고 싶다’는 큰아이를 위해서 민수가 센터에 입소한 기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넥슨 어린이센터’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소아·청소년 중증 환자를 가족 대신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안전하게 돌봐주는 시설이다. 중환자 자녀를 돌보느라 지친 가족들이 재충전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이 센터 개소식을 앞둔 지난달 30일 이곳을 먼저 찾았다. 서울대병원 원남동 골목길을 올라가면, 연면적 997㎡(약 302평)의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노란색 건물이 나타난다.
어린 자녀 환자를 돌보는 것과 고령의 부모를 돌보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 성인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은 있어도, 어린이 중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은 보기 힘들다. 자식을 낳은 죄책감을 가진 부모들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도저히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은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중증 소아 환자 가족들은 늘 무거운 책임감을 가슴에 지고 산다”며 “이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종일 간병 필요한 소아환자 전국 4000명
민수처럼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 하루 종일 간병이 필요한 중증 소아 환자가 전국 4000명으로 추산되지만, 국내에 이들을 위한 별도의 돌봄 의료 시설은 없었다. 환자 가족을 돌본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센터장을 맡은 김민선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 2017년 재택 의료에 대해 연구하던 도중 해외의 중증 소아 환자 의료 돌봄 사례와 개념을 듣고, 우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바로 그때 넥슨 재단에서 후원 전화가 왔다”고 떠올렸다.
센터 설립에 서울대병원과 보건복지부, 넥슨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힘을 모았다. 넥슨재단이 기부금 100억 원을 쾌척했고, 보건복지부가 국고지원금 25억 원을 댔다.
고인이 된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평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어린이 의료 시설을 지원해 오고 있다. 넥슨과 넥슨재단은 이번 센터 건립은 물론 지난 2014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00억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어린이 의료 시설에 만 총 55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은 “10여 년 전에 창업주 부부가 어린이 재활시설 없다는 것 알게 됐고, 어린이 재활시설 건립 도움 되는 활동 이어졌다”며 “이번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미래인 어린이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후원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외래진료 후 입원 가능...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예약
넥슨 센터에는 총 16병상이 마련됐다. 센터 입원은 한 번에 최장 7박 8일, 연간 20박21일까지 가능하다. 24시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에 대한 전문지식을 충분히 갖춘 간호인력을 배치했다. 중증 소아 단기 입원 병상뿐 아니라 놀이치료실 등도 설치했다.
김민선 센터장은 “중증 소아 환자를 돌보는 것은 보람도 되지만, 무력감이 생길 수도 있는데 많은 의료 인력이 지원해 줬다”고 말했다. 최은화 교수는 “침대에 주로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이동한다는 것을 감안해 동선을 넓게 짰고, 문턱도 모두 없앴다”고 설명했다.
병실에 문턱은 없었고, 책상은 둥글게 깎았다. 또 넓은 통창으로 채광을 높였고 어린이 환자들이 병원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게 층별로 바다, 숲, 강으로 색깔 테마를 뒀다. 센터의 별칭은 ‘도토리하우스’다. 센터의 바깥에 길을 찾는 표지판도 ‘도토리하우스’라고 적었다. 도토리(환아)가 자라서 든든한 참나무(성인)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센터에 입원하려면 24세 이하 소아청소년이면서, 스스로 보행이 어렵고, 스스로 호흡이나 식사가 어려워 인공호흡기 등 의료기기가 필요하고, 감염 등과 같은 급성기 질환이 없는 안정된 상태여야 한다. 서울대병원에서 사전외래 진료를 받은 후 입원할 수 있으며, 서울대어린이병원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이용 가능하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1박에 1만~2만 원 정도다. 나머지는 국만건강보험으로 충당한다. 수많은 지원자가 몰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병원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부모들은 아픈 자녀를 맡기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소극적이다”라고 말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환자 가족이 잠시라도 안심하고 아이를 맡겨 아이를 다시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서울대병원 넥슨센터를 시작으로 전국 각 지역으로 이런 시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개소식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 김영태 병원장,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 이재교 NXC 대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가 참석했다. 김영태 병원장은 “서울대병원은 국가중앙병원으로서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운영을 통해 소아청소년 환자에 대한 전인적 치료와 중증 질환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고, 공공의료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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