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간병만 14.4시간..."중증아동환자 이곳에 잠깐 맡기세요"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를 둔 보호자의 하루 간병 시간은 평균 14.4시간(서울대병원 2020년 조사)이다. 중증 소아 환자 자녀를 둔 A씨는 “에너지 음료로 버티고 있다”며 하루하루 수면 부족과 고된 돌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본인의 수술을 미루거나, 친정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들도 발생하고 있다.
자녀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부모에게 극도의 책임과 부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그 누구보다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울대병원이 ‘단기 의료 돌봄’ 모델을 마련했다. 병원은 1일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의 단기 입원 치료 시설인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를 개소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들은 인생의 상당 기간 혹은 평생을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며 “가정에서 24시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부모는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없고 매일 조마조마하며 아이가 아프면 자신에게 화가 나는 등 온전히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희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단 며칠만이라도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정신적·육체적 휴식을 갖고 재충전을 해 다시 기운을 차리고 환자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에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의 단기 돌봄 병상은 있지만 단독 병원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기계에 의존하며 24시간 돌봄 필요한 아동 대상
중증 아동 환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려면 독립 건물을 준공하고 관련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비용 부담 등이 따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의료 서비스 모델이라는 점에서 병원은 센터 설립을 단행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아동 환자를 위해 의료진이 교대 상주한다. 최은화 소아진료부원장은 “호흡이 유지되지 않아 산소를 투여하거나 빈번하게 가래를 뽑아야 하거나 튜브로 영양을 공급하는 경관 영양을 하거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아이들은 종일 돌봄이 필요하다”며 “센터에서 아이들은 24시간 상주하는 전문의, 3년 이상 소아병동 등의 경력이 있는 간호사들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입원 환자는 24세 이하 소아청소년으로 제한된다. 자발적으로 이동할 수 없고 인공호흡기, 산소흡입, 기도흡인, 경장영양, 자가도뇨, 가정정맥영양 등에 의존하고 급성기질환이 없는 상태일 때 입원 기준에 충족한다.
센터 내에는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의 특성에 맞춘 응급 장비 및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센터 내에서 대처하기 어려운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땐 서울대병원 중환자실과 연계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전용 구급차도 마련됐다. 최 소아진료부원장은 “이러한 돌봄 프로토콜이 초석이 돼 점점 확충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단기 휴식 서비스(respite care)’를 제공하는 나라들이 있다. 김민선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장은 “인공호흡기, 기관절개관, 비위관 사용 등 의료에 의존하는 소아 환자를 둔 부모들은 지속적인 간병 부담을 갖는다”며 “해외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일시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리스파이트 케어 서비스가 있으며 이것이 센터 개소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 환자 본인 부담금 5%...최대 20일 입원 가능
이번 센터 건립을 위해 보건복지부는 2019년 정부보조금 25억 원을 지원했고, 넥슨재단이 100억 원을 후원했다. 넥슨은 이후 수익금을 추가 기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별도로 기부하고자 하는 후원자들이 생기고 있어 서울대병원은 센터가 단기 돌봄을 위한 좋은 모델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센터 내 병상은 총 16개로, 2인실 4개, 4인실 2개로 구성돼 있다. 작은 규모지만 센터가 좋은 돌봄 모델이 되면 전국적으로 이 같은 센터가 확장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1회 최대 7박 8일 이용 가능하며 연 5회 통합 최대 20일 입원할 수 있다. 환자는 사전 외래를 통해 병력 청취 등으로 상태를 살피고 입원 및 예약 확정을 받게 된다. 보호자는 첫날 의료진에게 돌봄을 위한 인수인계를 하고 이후 병원이 돌봄 서비스를 시행한다.
센터 개소 전인 지난달 30일 5명의 아동 환자가 입원했다. 태어날 때 저산소성 뇌손상을 받은 아이 등이 입원했다. 모든 환자가 20박씩 이용할 시 병상가동률 80% 기준으로 연간 234명, 14박 사용 시 334명 이용 가능한 수준이다.
서울대병원은 복지부 ‘중증소아 단기입원서비스 시범사업’ 참여기관으로, 시범사업 의료수가를 적용받는다. 중증소아 입원돌봄계획을 수립했을 땐 1회에 24만9090원, 입원돌봄서비스료는 간호사 당 환자 수에 따라 하루 13만 2170원에서 20만 4550원이 산정된다. 입원돌봄관리료는 2인실 기준 하루 16만 2040원, 4인실 기준 10만 1280원이다. 단, 수가만으로 독립 건물 사용 및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사업을 통해 적자 부분을 보상 받고, 기부자 후원금 등으로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건강보험 환자의 센터 이용 본인 부담금은 전체 비용의 5%다. 3박 입원 기준 환자가 실제로 부담하게 되는 입원료는 약 7만 원 전후가 될 전망이다.
중증 아동 환자는 침대에서 거의 생활하기 때문에 병원은 침대 이동이 가능한 엘리베이터, 복도 공간 등의 동선도 마련했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 시간, 가족 및 형제자매를 위한 프로그램 등도 운영될 예정이다.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으로 전공의 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병원은 센터와 함께 할 의료진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의료인들이 병원으로 연락을 해오면서 2교대 혹은 3교대 근무가 가능한 25명의 의료진이 구성됐다. 진료교수 5명, 수간호사 1명, 간호사 18명, 간호운영기능직 1명으로 구성된다. 병원은 이번 모델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당장은 적자 운영을 해야 하지만, 이 사업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알리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높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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