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높아지면 ‘쓰윽’… 베네치아 범람 막은 ‘모세’ 정체
상습 침수로 골머리를 앓던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시름을 덜었다.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면 자동으로 솟아올라 범람을 막는 조수 차단벽 ‘모세’(MOSE·Modulo Sperimentale Elettromeccanico) 덕분이다.
31일(현지시각) 안사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5분쯤 베네치아 주변 조수 수위가 154㎝까지 치솟았다. 이는 당초 베네치아 조수 예측 및 보고 센터가 전망한 135~140㎝를 초과한 수준이다.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강한 시로코 바람과 만조 시기가 맞물리면서 조수 수위가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베네치아에서는 매년 늦가을과 초겨울 조수가 높아지는 아쿠아알타(Acqua alta) 현상으로 피해가 생긴다. 연간 4번 정도 아쿠아알타 현상이 일어나는데, 매번 시내가 침수되는 등의 불편함을 겪었다. 1966년에는 조수 수위가 194㎝까지 치솟으면서 큰 홍수 피해를 겪었고, 1986년과 지난해 10월에는 156㎝까지 급상승해 도시의 75%가량이 물에 잠겼다.
평소 같으면 도시 70% 안팎이 잠겼을 수준의 조수 수위였지만 올해는 피해가 없었다. 베네치아 석호 입구에 설치된 모세가 가동돼 범람을 막으면서다. 루이지 브루냐로 베네치아 시장은 이날 엑스(옛 트위터)에 모세가 떠오르는 이미지와 함께 모세를 관리하는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세는 총 78개의 인공 차단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대 3m 높이의 조수까지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평상시에는 바닷속에 잠겨있다가 조수 수위가 130㎝ 이상이 되면 수면 위로 솟아올라 범람을 막는다. 모세 아이디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나왔지만, 착공은 2003년 시작됐다. 그러나 환경보호론자의 반발과 당국의 예산 부족 등 문제로 공사가 미뤄지다 2020년에야 가동되기 시작했다. 모세의 완공까지 10년 넘는 기간 동안 총 60억 유로(약 8조6221억원)가 들었다.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인 만큼 모세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올해 범람을 막은 것은 물론, 지난해 11월에는 무려 173㎝ 높이의 조수를 막아 이목을 끌었다. 가동 영상을 보면, 모세가 솟아올라 사선의 차단벽을 형성해 조수 범람을 막는다.
다만 모세에도 단점은 있다. 한번 가동할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1회 가동 시 드는 금액이 20만 유로(약 2억8700만원)다. 2020년 10월 3일 가동 이후 현재까지 약 60회 가동됐는데, 지출된 비용이 1000만 유로(약 143억4600만원)을 넘어섰다.
당국의 관리 소홀로 모세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20년 12월, 모세가 적시에 가동되지 않으면서 베네치아에 최대 138㎝의 조수가 밀어닥쳐 도시 곳곳이 침수됐다. 당시 모세 통제센터가 시시각각 돌변하는 기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규정과 매뉴얼에 얽매여 피해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당시 침수 피해액은 1500만 유로(약 215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일각에서는 모세가 기후변화에 따른 조수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장기적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 베네치아 IUAV 건축대 교수이자 환경단체 암비엔테 베네치아의 일원인 안드레이나 지텔리는 “매우 강한 바람과 3m 넘는 높은 파도가 치는 극단적인 기후 조건에서 모세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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