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20m 절벽 동네, MZ 명소 됐다 [김민주의 MZ 트렌드]

2023. 11. 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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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사진=김민주 기자


최근 20~30대 사이에서 ‘핫플’로 떠오른 동네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던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핫플레이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노후 건물이 90%를 차지하고, 평균 19%의 급경사 지형이라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주거지 비중이 높은 동네임에도 주차 공간이 부족해 차량을 이용하기도 힘들다. 낙산공원 성벽과 연결되는 이 동네는 바로 종로구 창신동이다. 운동화를 신고 가파른 언덕길을 15분 이상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이곳을 찾는 젊은 층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해발 120m의 절벽 마을에서 만난 24살 A씨는 창신동을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동네’라고 설명하며, 친구의 인증사진을 보고 따라 방문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창신동 필수 코스는 다음과 같다. 창신동 완구거리에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한 뒤 골목길을 따라 절벽 마을로 올라간다. 이때 이동하는 중간중간 높은 계단 앞이나 골목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식사 후 남산 경치를 조망하며 커피 한 잔에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다. 음식점은 태국과 홍콩 음식, 한식까지 폭이 넓고, 디저트 카페 역시 도넛과 밀크티 등 선택지가 꽤 다양하다. 이어 낙산공원 성곽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다. 헤어지기 아쉽다면 창신 골목시장에서 매운 족발을 먹어보는 것도 권했다.
 
창신동 내 2030세대의 주요 활동 상권은 1호선 동대문역과 동묘앞역 중간 지점부터 약 1.3km 거리에 있는 6호선 창신역 인근 절벽 마을까지로 반경이 꽤 넓은 편이다.

창신동 완구거리 상점/사진=김민주 기자


 
주로 중장년층이 거주하는 이 동네에 MZ세대가 몰리기 시작한 건, 창신동 완구거리가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다. 120여 개 문구·완구 점포가 모여 있는 이곳은 키덜트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키덜트(Kid+Adult)란 어른이 되어서도 장난감, 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등 어릴 적 감성을 추구하는 이들을 뜻한다. 옛 추억을 자극하는 고전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공간은 레트로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바로 옆 골목시장에 위치한 매운 족발, 민물장어, 곱창집 등 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진 노포 음식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거기에 절벽 마을에 테르트르 카페와 창창, 단풍도넛(구 도넛정수), 홍콩밀크컴퍼니, 우물집 등 젊은 층을 겨냥한 F&B 매장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해당 업체들은 절벽 동네의 특성을 활용했다. 접근성이 좋지 않았던 가파른 지형을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을 앞세워 SNS 인증사진 명소로 브랜딩했다.

창신동 창창 음식점/사진=김민주 기자


창신동 단풍도넛 매장/사진=김민주 기자
창신동 우물집/사진=김민주 기자


그중 창창과 밀림, 단풍도넛, 우물집은 글로우서울이라는 기업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도시 재생 및 공간 기획 업체 글로우서울은 이미 크게 형성된 흥행 상권을 따라가는 대신, 없던 상권을 새로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지역에 접근했다. 확실하고 독특한 컨셉의 외식 업체를 연달아 입점시켜 도시에 생기를 더하는 일명 창신동 프로젝트를 진행해 2030세대를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완구거리나 족발집이 있는 골목시장 등 오래 자리를 지킨 일부 장소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어 절벽 마을에 개성 있고 인스타그래머블(SNS에 올릴 만큼 트렌디)한 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창신동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MZ세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곳,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뻔하지 않고 재밌고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일명 펀슈머(Fun+Consumer)인 젊은 층은 번거로움도 마다치 않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석지고 오래된 곳들을 찾아다닌다. 건물 칠이 벗겨지고 간판 색이 바랜 을지로와 신당동 등 오래된 동네를 ‘힙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젊은 층이 유입되며 트렌디해진 두 동네는 이제 ‘힙지로(힙+을지로)’, ‘힙당동(힙+신당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창신동 절벽 마을 골목길/사진=김민주 기자


이들은 오히려 창신동의 낡고 불편한 특성에 매력을 느낀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오래된 건물 사이사이를 누비고, 높은 경사길을 오르며 놀거리와 볼거리, 먹을거리를 찾아다닌다. 오래 자리를 지켜온 주택과 골목길의 고즈넉함, 이와 공존하는 반짝거리는 젊은 공간은 젊은 층을 매료할 만한다.
 
비인기 상권이었던 창신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절벽 마을의 몸값도 함께 뛰었다. 글로우서울이 처음 창신동에 매장을 연 2021년 말 기준 절벽 마을 건물 가격은 1평(3.3)당 1300~1500만 원 수준이었다. 이후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평당 2500만~3000만 원 수준까지 가격이 올랐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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