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의 비극, 중국은 무엇을 잃었나 [유레카]

박민희 2023. 11. 1. 14: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생전의 리커창 중국 전 총리를 만난 이들은 중국 현실을 꿰뚫고 있는 그의 정확한 지식과 지적인 탁월함에 감탄하곤 했다.

지난달 27일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거대한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은 그의 업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리커창이 가지 못한 길, 중국이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레카]

리커창 전 중국 총리. 김재욱 화백

생전의 리커창 중국 전 총리를 만난 이들은 중국 현실을 꿰뚫고 있는 그의 정확한 지식과 지적인 탁월함에 감탄하곤 했다. 리커창은 중국 역사상 가장 학식 높은 총리였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닫혀 있던 대학이 다시 문을 열면서 경쟁이 역대 최고로 치열했던 1977년 대입 시험을 통해 베이징대학에 입학한 리커창은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경제학 논문상까지 받은 경제 전문가였다. 그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기반으로 주목받는 차세대 지도자로 급성장했다.

2007년 리커창과 시진핑이 중국 최고 지도자 자리를 두고 경쟁했을 때,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과 그의 최측근 쩡칭훙이 시진핑을 선택했다. 이들은 리커창에 비해 특권층 인맥으로 자신들과 연결된 시진핑이 더 통제하기 쉬울 것으로 오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은 1인 권력을 강화했고, 리커창은 중국 역사상 가장 실권 없는 허수아비 총리가 되었다. 시장과 민영기업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세계와 연결을 확대하겠다는 ‘리코노믹스’의 청사진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지난 3월 리커창은 업적이 아닌 회한만 남긴 채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달 27일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거대한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은 그의 업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리커창이 가지 못한 길, 중국이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것이다. ‘리커창이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면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좀 더 개방적이고 활력있는 사회로 나아갔을까’, 그를 애도하는 마음 속에는 이런 질문이 있다.

리커창의 죽음은 시진핑 1인 권력에 대한 견제가 사라진 시대를 상징한다. 리커창과 후진타오 전 주석 등 ‘공청단파’로 불렸던 이들은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능력과 경쟁만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전문가 관료들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주석을 비롯한 지금 공산당의 핵심 세력은 전직 최고 권력자들의 자손들인 ‘훙얼다이’( 紅二代·홍이대)다. 이들은 ‘지도자의 자제인 우리만이 중국을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리커창을 비롯한 평민 출신 관료집단인 공청단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가 ‘강제로’ 퇴장당했고, 리커창이 퇴임 연령이 남았는데도 지도부에서 밀려났고, ‘공청단의 황태자’로 여겨지던 후춘화는 25인의 정치국위원에서도 탈락했다. 리커창의 죽음은 시진핑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이견을 말하고 견제할 세력은 없어진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했을 뿐이다. 리커창이 2020년 “아직도 6억명은 월 수입이 1000위안(약 19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해, ‘중국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시진핑의 선언에 반론을 제기했던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1989년 후야오방 총서기의 죽음이 톈안먼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리커창 전 총리의 죽음은 허용된 추모 장소에 산더미처럼 쌓인 꽃다발과 추모 행렬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리커창의 정치적 유산이 너무 빈약하고, 공산당 내부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사라졌으며, 감시와 검열은 어느 때보다 삼엄하다. 시진핑 주석은 2일 리커창의 유해를 화장하고 그를 조용히 지울 것이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