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악' 한동욱 감독만의 '누아르'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하늘 아래 똑같은 색은 없다.'
종종 "그게 그거 아니야?"라며 색깔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핀잔처럼 주어지는 말이다. 이 말처럼 '누아르'도 다 똑같은 검은색이 아니었다.
한동욱 감독이 '최악의 악'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한 연출 의도 및 비화를 밝혔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극본 장민석·연출 한동욱)은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 강남 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준모'(지창욱)가 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액션 드라마.
한동욱 감독에게 이번 '최악의 악'은 첫 시리즈물이었다. 한 번 개봉되면 끝인 영화와 달리, 매주 회차가 공개되는 시리즈물이라 매번 반응을 확인했다고. 또한 영화는 관객수가 실시간 집계되지만, OTT시리즈물을 눈에 보이는 수치를 알 수 없어 더욱 시청자 반응을 찾아보게 됐다면서 첫 리즈물 작업하면서 느낀 점들을 밝혔다.
아무래도 '언더커버 누아르'라는 장르 탓에 영화 '신세계' '무간도' 등이 비교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한동욱 감독은 "(처음 연출 제안받았을 때) '신세계'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고, '무간도'의 팬으로서 '넘어설 수 있을까?' 했는데 치정극도 있고 (앞선 두 작품과) 다르게 작가님이 풀어주셔서 그런 점에 포커스를 두면 '신세계' '무간도'와 결이 다른 언더커버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만이 가진 색깔은 무엇일까. "각 인물들에게 감정라인을 주고 싶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게 뭘까. 언더커버 수사의 목적이 아니라 사건을 대했을 때 인물들이 나아가는, 주인공에게만 서사가 부여하기보다 여러 인물들 간 각자의 스토리를 통해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차별점을 밝혔다.
'최악의 악'에 대한 또 다른 평가 중에는 'MZ 누아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누아르라는 장르적 특성상 그동안에는 젊은 배우들이 한적 별로 없지 않았나. '최악의 악' 속 강남연합은 기존 조직폭력과는 다르다. 강남연함만의 독창적인 특색이 있다. 노란머리도 있고 귀걸이도 하는 모습이 우리가 아는 조폭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런 점에서 MZ의 모습 아니었을까"면서 기존 누아르와 또 다른 지점을 설명했다.
한동욱 감독은 '최악의 악' 현장을 가면서 '개그'를 준비해 갔다고 너스레 떨었다. 그만큼 배우들과 다른 스태프들의 철저한 준비가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현장 자체가 큰 책임감을 갖고 온다"면서 "(배우들을) 완전 믿었다. 항상 제 생각보다 그 이상이었다. 제가 생각 못한 부분까지 너무 행복하게 받는 입장이었다. 스태프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제시를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한 감독이 개그를 준비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오히려 너무 집중하면 분위기도 너무 안 좋아진다. 말꼬리 잡아 농담하다보면 분위기도 좋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더라"고 말해, 서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좀 더 여유로운 현장을 위함이었음을 가늠하게 했다.
'최악의 악'에서는 강남연합과 재건파가 부딪히는 대규모 액션이 있는데, 무려 3~4일간의 촬영기간을 거쳐 촬영됐다. 원래 촬영 장소는 '산장'이었지만, '강남연합의 사무실'로 장소가 변경된 비화도 있었다. 한동욱 감독은 장소를 바꾼 이유에 대해 "(산장에서) 기철, 준모, 의정이가 고립된 공간에서 재건파에 습격당하는 것도 좋았는데 '기철의 심장부'이자 '보금자리'에 위협이 오고, 그리고 준모는 의정이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다"면서 "'심장부'에서의 진짜 위기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기점에서 준모가 많이 변한다. 사실 준모만 아니라 모두가 변한다. 독립적인 공간보다 생활 공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좋겠다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분명 '액션신'이지만, 액션만을 보여주기 위한 액션인은 아니었다. 한동욱 감독은 "감정 변곡점이나 의정이의 감정을 보여줘야겠다 생각하고서 어떻게 보여줄까 생각할 때 이러한 액션이 나온 거다.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액션이라 준모가 의정이를 보고 '악마'처럼 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지옥을 방불케하는 현장에서 피칠갑을 하고 선 준모의 모습은 비주얼적으로 굉장한 임팩트를 남겼다. 한 감독은 "준모의 스트레스를 표현하고 싶었다. 의정이를 구하려던 살육전에 동화되며 악마가 되는 느낌. 그런 느낌들로 변곡점을 주고 싶었다. 또 준모의 눈으로 자기 와이프 의정을 기철이가 챙기는 걸 보게 되지 않나. 틀어지는 상황을 세 인물에 대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어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준모, 기철, 의정만 아니라 회차가 진행될수록 강남연합의 관계성도 점차 뒤틀렸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시작한 강남연합은 끈끈한 우정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모종의 이유들로 한 명씩 떨어져나가며 와해되는데 이는 기철의 손발이 잘려나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다. "정배(임성재), 희성(차래형), 종렬(이신기) 등 캐릭터를 기철이란 '한 인물'로 보고 싶었다. 기철의 '의심'을 정배가, '털털함'을 희성, '잔혹성'을 종렬이 상징하는 거다. 그렇게 표현되면 준모가 강남연합을 한 명씩 꺾어나갈 때마다 기철의 팔다리를 잘려나간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약해지는 기철이와 그 옆을 차지하는 준모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정말 작고 소소한 사건이 단초가 돼 서로 틀어지고 믿지 못하게 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여다볼 수 있다.
천사장(성일)의 죽음과 관련해 비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이에 대해서는 "준모가 가장 처음 변화하는 시점이다. 자의든 타의든 준모의 입장을 생각할 때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너무 멀리 와버린 걸 준모의 시선에서 봤을 때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 비의 역행으로 대변한 거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언더커버인 만큼 준모에게 여러 번 위기가 온다. 본인의 정체를 들킬 뻔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엮이게 되고, 경찰임에도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매 위기마다 해결하고 극복하면서 나아간다. 다만 이러한 위기-극복-위기-극복 패턴이 다소 반복되는데 한 감독은 "두 시간에 응축하는 영화와 달리 12부작이라 극 안에서 긴장감이나 언더커버로서 고충, 이 성취감에 대한 쾌감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 분명 차이가 있어서 시퀀스별로 돌파하는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반복적이지만 장르적 특성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준모가 다양한 방법으로 위기들을 극복하니까 그게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그 과정을 거쳐야지만 점차 변모하는 준모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최악의 악' 미공개 영상이 뒤늦게 공개되기도 했는데, 해당 영상은 1화 오프닝 시퀀스가 될 장면이었다. 준모의 과거와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지만 '현재'에 의해 변하는 캐릭터란 점과 분량적 측면에서 삭제됐다. 한동욱 감독은 "댓글을 보니 기철이만 전사를 보여주고 준모는 안 보여주냐고 하더라. 준모는 과거에 의해 움직이고 지금에 따라 변화하는 캐릭터라. 과거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준모의 서사라 생각했다. 기철이는 '과거'때문에 변화하려 하기에 과거를 보여줘야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준모가 얼마큼 악착같은 캐릭터인지 보여주는 시퀀스다. 다만 진행될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게 충분히 있어서 반복이라 생각해 아깝지만 삭제했다. 너무 힘들게 찍어서 아까웠다. 너무 아까워서 나중에 오픈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삭제된 또 다른 장면도 있었는데, 대규모 액션신에서 기철이 의정을, 의정이 기철을 서로 지켜주는 장면이라고. "의정이도 첫 액션이고 기철이도 의정이를 위하는 느낌이 잘 살았다. 그런데 그 시퀀스 자체가 준모의 감정이 중심이라 (의정과 기철의 액션은) 편집했다. 나중이라도 보여드리면 기철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
Copyright © 스포츠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