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말을 건네는 것…가을 詩心 깊어간다
박목월 ‘나그네’, 김남조 ‘겨울 바다’
배우 박정자·김성녀, 시인 문정희 등
한국 대표 문인·배우 모여 낭송회
문학동네 시인선 200호 돌파 눈길
‘시 쓰는 사람’ 시인들이 말하는 시(詩)에 대한 한줄 정의다. ‘요즘 누가 시를 읽느냐’는 말이 난무하는 속도의 시대. 국내 대표 시집 시리즈물 문학동네시인선이 200호를 맞았다. 200호 출간 기념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를 보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인들의 시심(詩心)이 가득 담겨 있다.
시인 황희찬은 30일 서울 마포구청도서관에서 열린 200호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문학동네시인선은 12년간 200권의 시집을 통해 시의 오늘과 미래를 증명해왔다”며 “독자들의 선택 폭을 넓히고, 시문학 시장의 분위기를 쇄신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라면, 시를 읽는다는 건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라면서 시집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도서관이나 서점 시 코너를 찾아 시집을 하나씩 펼쳐보다 보면, 영혼의 단짝 같은 문장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침 1일 제37회 ‘시의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시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국 대표 시인과 연극인들이 명시를 낭송한다. 지금 꼭 듣고 싶거나, 당신을 꼭 닮은 뜻밖의 문장을 마주할 기회다.
매년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 평가받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은 ‘소년’ 창간호 발행일(11월1일)에 맞춰 지난 1987년 제정했다.
37회째 열리는 이번 행사는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야외 시 낭송 및 공연을 연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이근배, 김종해, 오세영, 신달자, 나태주, 문정희 시인 등과 더불어 연극배우 박정자, 손숙, 김성녀가 시를 들려준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정치적 구호가 넘쳐나는 광화문에 하루 만이라도 시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날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극장이 아닌 광장을 택한 것도 시와 대중의 거리를 좁혀보자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작고한 김남조 시인을 추모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나태주 시인은 자작시 ‘시의 어머니-김남조 선생님 소천에’를 낭송한다. 김성녀 배우는 고인의 대표시인 ‘겨울 바다’를 낭독할 예정이다. 막을 내리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의 낭송에는 출연자 전원과 시민들을 무대로 불러 함께 낭송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 좀 읽는다’는 사람이라면 창작과비평사(창비), 문학과지성사(문지), 문학동네(문동) 시인선을 모를 리 없다. 감각적인 제목과 간결한 표지로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문학동네시인선이 2011년 첫 시집을 펴낸 후 12년 만에 200호를 출간했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문학동네 시인선은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창비 시인선과 문지 시인선은 각각 1975년, 1978년 첫 시집을 내놨다. 문학동네시인선의 차별점 역시 “보다 젊은 감각과 깊은 사유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1~199호를 펴낸 시인 199명 가운데 첫 시집을 낸 시인이 전체 4분의 1(45명)에 이를 정도다. 그중 박준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출간 10년째인 올초 60쇄를 찍으며 지금까지 20만부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첫 시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인의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감각을 담아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시인의 다음 시집으로 독자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200호 출간 기념 일명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는 앞으로 시인선을 낼 시인들의 신작 시 각 한 편씩을 ‘미리보기’처럼 엮었다. 안도현, 박연준, 안희연, 이훤, 임솔아, 정한아 등 총 50명의 시인을 만날 수 있다. 문학동네는 시인선 200호 기념 한정판 도서를 한 권 더 출간했다. 1~199호 ‘시인의 말’을 모은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이다. 시집 맨 앞에 놓이는 ‘시인의 말’을 읽다보면 그(시인)답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기획위원인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티저 시집 ‘펴내는 말’을 통해 시를 읽는다는 행위는 독자와 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한 시인선의 역할을 곱씹게 한다. 그는 “시인과 독자 모두 스스로 당당해지는 시의 판을 벌이는 것”, “시가 가진 섬세한 인지적 역량을 신뢰하고, 그를 통해 시인과 독자 모두의 삶이 깊이를 얻게 되길 꿈꾸기”라고 썼다.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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