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① 반년새 미래 R&D 예산 25조원이 사라졌다…대통령 말 한 마디에 뒤집힌 최상위 법정계획

이종현 기자 2023. 11. 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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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조변석개 R&D 정책
5년간 170조원 투자한다더니 반년 만 145조로 줄어
“연구 현장 예측 가능성 저해… 민간 투자에도 악영향”

내년도 정부가 지출하기로 한 R&D 예산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으로 책정됐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9%에서 3.9%로 줄었다. 과학기술계는 33년 만의 예산 삭감에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이르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또 이런 가운데 늘어난 예산은 왜 늘었는지 아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은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으로 수립한 최초의 법정 투자전략으로 국가연구개발 투자의 전략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 2030년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3월 7일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중장기 투자전략은 향후 5년간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전략적 투자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법정계획이자 최상위 투자전략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예측가능하고 전략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겠다며 만든 제도다.

윤석열 정부는 중장기 투자전략을 통해 2027년까지 5년간 170조원을 R&D 예산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R&D 예산 투입 과제까지 정해놨다. 4대 전략과, 23개 과제를 중심으로 예산을 투입해 현재 기술 선도국의 80% 수준인 한국의 기술 수준을 2027년 85% 수준까지 높인다는 구상까지 담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7월 13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 허브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제11회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을 둘러보고 있다./대통령실

중장기 투자전략은 공무원 몇 명의 머리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2021년 10월에 전문가 130명이 참여하는 수립위원회가 구성됐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22년 11월 대국민 공청회와 같은 해 12월 산업계 간담회를 거쳐 올해 2월 과학기술분야 정책 조정·심의를 담당하는 최상위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확정했다.

그런데 거의 1년에 걸쳐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 수백여명이 참여해 만든 국가 R&D 중장기 투자전략이 발표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뒤집어졌다. 단 한 명의 말이면 충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는 부랴부랴 새로운 예산안을 내놨다. 8월 말 다시 발표된 2024년도 R&D 예산안은 지난해보다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으로 줄었다. 여론의 관심은 내년도 R&D 예산에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는 예산 삭감의 여파가 내년 1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재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R&D 예산 삭감은 2027년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발표된 중장기 투자전략에서는 2027년까지 5년간 170조5000억원이 R&D예산으로 투자된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R&D예산 삭감 방침이 발표된 직후 지난 9월 나온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2027년까지 5년간 145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불과 6개월 만에 24조8000억원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 수립에 참여한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은 법정 계획이라더니 수정된다는 연락이나 통보도 없이 투자액의 5분의 1이 날라간 셈”이라며 “예측가능한 R&D 투자를 하겠다더니 대통령 말 한 마디로 뒤집을 거면 이런 투자전략이나 계획은 왜 세우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도 R&D 예산 삭감의 영향이 내년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기재부가 세운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R&D 예산은 2024년 삭감된 25조9000억원, 2025년 27조6000억원, 2026년 29조5000억원, 2027년 31조6000억원으로 잡혀 있다. 2027년이 돼야 겨우 올해 R&D예산인 31조1000억원 수준을 회복한다. 이것만 보면 내년에만 예산이 줄어들고 그 이후에는 다시 매년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애초에 중장기 투자전략과 비교하면 매년 당초 계획보다 6조원 이상 예산이 부족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장기 투자전략에서는 2024년 32조원, 2025년 33조6000억원, 2026년 35조7000억원, 2027년 38조1000억원으로 R&D 예산이 잡혀 있다.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비교해보면 내년에는 6조1000억원이 적고, 2027년에는 6조5000억원이 적다. 내년에만 삭감하고 이후에는 예산을 늘리는 것처럼 눈속임을 했을 뿐, 사실상 매년 6조원씩 R&D 예산은 부족한 것이다.

국가예산정책처도 “R&D 예산안은 과거의 점진적인 증가 추세와 달리 전년대비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이는 연구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민간기업의 대응투자 축소로 이어질 우려도 있어 내년도 R&D 예산안의 적절성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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