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난항...앞으로 거주할 사람도 없다 [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2023. 11. 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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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조직 없는 지자체 관리 힘들어
소유주들은 비용부담에 철거 소극적
영국·캐나다·일본 해외 벤치마킹 필요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집이 방치된 모습 이준태 기자

오랜 기간 방치되며 흉물이 된 ‘빈집’에 대해 각 지자체는 철거·리모델링 및 입주 지원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빈집을 고쳐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수요 자체가 적다 보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빈집을 거주주택으로 바꾸는 것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각 지자체의 빈집 관리 역량은 제각각이고, 부수적 업무로 여겨 대부분 전담 조직도 두고 있지 않다. 이에 전문성을 지닌 조직 설치, 관련 사업 확대를 위한 재정 확충, 빈집세 도입 등이 필요하단 조언이 나온다.

▶지자체 빈집 관련 사업 지지부진=최근 농림축산식품부 국감에선 빈집 발생 속도가 너무 빠르단 지적이 나왔다. 당초 2027년까지 빈집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빈집 정비 활성화 대책 발표했지만, 발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빈집 활용 대책 효과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각 지자체에서 펼치는 진행 중인 빈집 관련 사업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1일 대구시에 따르면 올 3월부터 사업 신청자를 모집한 빈집 리모델링 지원사업은 10월 현재까지 각 구·군에서 신청 건이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시는 빈집을 단장해 반값 임대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구시 관계자는 “각 빈집 정비 예산을 추정해 27동 정도까지 정비 지원을 목표로‘ 했는데, 어떤 구청에서도 지원 신청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빈집 등급별·유형별 실태조사를 실시한 전라남도는 지난해 말 기준 빈집이 2만1766동이다. 이는 지난 2017년 1만1000여동 수준에서 5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전남 나주시의 경우 지난 8월 ‘농촌활력 빈집재생’ 사업을 통해 왕곡면 마산마을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홍보했는데, 모집 가구는 애초에 1가구뿐이었다. 최근 입주자를 선정했는데 신청가구는 5가구에 그쳤다. 지자체의 주거 목적 빈집정비사업은 결국 근본적으로 수요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촌향도 현상에 더해 이미 도심에서도 인구 감소, 노후 주거지의 구시가지화로 빈집이 생기고 있다. 일부 귀농귀촌족 등에 기대기에는 빈집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른 것이다.

▶지자체 역량도 제각각=아울러 빈집의 지역 실무를 맡는 각 지자체의 관리 역량은 여전히 제각각인 상황이다. 대부분 빈집 전담 조직이 없고, 일부 기초 지자체는 빈집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전체 228개 시·군·구 중 약 24%인 54개 지역은 빈집 관련 조례가 없었다. 2022년 기준으로 시군구들이 빈집 관련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평균 약 2억8000만원에 불과했다. 빈집 한 채 철거에 드는 평균 비용을 2500만원으로 잡고, 지역 내 빈집의 철거 비용과 시·군·구 내 빈집 사업 예산을 비교해보면, 한 해 예산은 시·군·구 내 빈집 전체를 철거하는 데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의 3.5%에 그쳤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철거하기도 쉽지 않다. 빈집 관련 법·제도 중 농어촌 빈집 문제는 ‘농어촌정비법’상 빈집 정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이 법에는 주변에 현저히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특정 빈집에 대해선 강제 철거 근거가 있지만, 사유 재산이므로 직권 철거가 어렵다.

아울러 일부 소유주들은 비용 부담에 철거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현행 건축물관리법에 따르면 빈집 비롯해 건축물 해체를 신고하려면 건축사 등 전문가를 검토한 해체계획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때 건축사 등에게 서명·날인을 받으려면 수십만원이 든다. 이에 전북 순창군 등 지자체는 군민들의 비용 절감을 위해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비를 지원키로 했지만, 관련 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 “담당 조직·재정 확충·빈집세 등 필요”=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빈집 정비를 위해선 담당 조직 설치, 빈집 정비를 위한 재정 확충, 자진 철거 혹은 주택 관리를 위한 빈집세 도입 등이 고루 필요하다고 봤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빈집 이슈가 한국에서 부각된 게 얼마되지 않아 담당 조직이 없을 수밖에 없다”며 “부처 차원에서 담당 조직을 정하고 선행연구를 해 도시 및 농촌의 빈집 발생 원인을 명확히 분석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계속되는 문제이므로 전담 조직 또는 전담 공무원 배치를 통해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방정부의 재정 확충, 중앙정부 및 광역 지자체 지원 확대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연구원은 자체 보고서에서 “지자체 내 빈집의 객관적 현황 파악·정비계획 수립, 4등급 빈집 철거 등 적극적 관리에 소요되는 필수 비용을 확보하고 관련 예산을 확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며 “중앙 역시 지방의 정책 집행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빈집 정비 속도를 내기 위해 빈집세 도입, 선택적 정비사업이 필요하단 분석도 이어진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빈집 지원책이 시행되는 지역이어도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은 지역이 아니라면 정책 실효성이 없다”며 빈집세 도입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영국, 캐나다, 일본은 빈집세를 통해 자발적으로 집주인이 철거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빈집이 늘어나는 쇠락지구가 늘 것”이라며 “버릴 곳과 취할 곳을 합리적으로 선택해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집 관리 위한 제도 손질은 현재 진행 중=한편 정부 차원의 빈집 관련 제도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현재 빈집을 철거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물게 한 농어촌정비법 개정안이 발의돼 법사위까지 간 상태다.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 자손이 빈집을 방치하는 경우가 늘어, 빈집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빈집 통계 등은 뒤늦게 일원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간 빈집 실태조사 및 정비는 도심 지역의 경우 국토교통부가, 농어촌 빈집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각각 맡았다. 각각 실태조사 방법, 등급이 다르다 보니 해당 부처들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빈집 관리체계 개편을 위한 제도 개선 연구용역’을 진행, 제도 개선에 돌입했다. 향후 빈집정보시스템을 통합 구축하고, 빈집 조사는 도시 및 농어촌으로 나누지 않고 행정구역별로 하기로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해당 용역을 통해 부처 간 협의체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도시와 농촌은 빈집 발생 원인 및 해소 방안 등이 다른데, 협의체를 통한 시범사업을 논의 중이다. 도시는 보통 빈집이 많은 지역을 정비사업구역으로 묶고 농촌은 단독주택 한 가구가 방치된 경우가 많아 철거사업을 많이 하는데 이런 일반적인 방식 외 특별한 개발사업을 하고 싶을 때 협의체를 통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은결·신혜원 기자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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