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적격인수자 정말 없나]① 하림·JKL연합, ‘현금 빼먹기’ 매도는 억울하다
7조원짜리 ‘공룡’ HMM을 놓고 세 원매자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끊임없이 유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세 곳 모두 현금 동원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데다, 최근에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적격 인수자가 없으면 매각을 강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현재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세 곳은 업계의 우려대로 ‘부적격자’일 뿐일까. 본입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이들이 HMM 인수 후보로서 가진 강점과 적격성 등을 다뤄봤다.
① 해운사를 경영해 본 유일한 후보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은 세 후보 중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NH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 등을 인수금융 대주단으로 일찌감치 확보했다.
컨소시엄의 최대 강점은 해운사를 직접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1조원을 들여 팬오션을 인수했으며,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JKL은 1050억원을 투입해 2021년 2902억원을 회수하며 2.76배의 수익을 거뒀다. 팬오션은 법정관리를 거쳐 지난해 영업이익 7800억원을 달성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 후 현재까지 한 번도 분기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해운업은 전형적인 시클리컬(cyclical·경기 사이클을 타는) 업종이다. 팬오션 같은 벌크선 업체는 그나마 장기 계약이 많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지만, HMM 같은 컨테이너선 업체는 경기의 영향을 더 심하게 받는다. 업의 특성상 해운사를 직접 인수해 경영해 본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림의 본업 자체가 시클리컬 산업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곡물을 수입해 사료를 만들어 동물에게 먹인 뒤 도축해 가공, 유통하는 밸류체인 자체가 변동성이 크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민감 산업은 잘 안될 때를 대비해서 욕심을 줄이고 잘될 때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하림에는 그런 DNA가 있기 때문에 팬오션 경영도 잘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② HMM 현금 빼먹기? “지나친 우려”
IB 업계에서 추정하는 HMM 매각가는 5조~7조원 수준이다. 그중 절반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한다면, 원매자들은 약 2조5000억~3조50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하림·JKL 컨소시엄이 HMM을 인수한 뒤 회사의 막대한 현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HMM의 현금성 자산은 상반기 말 기준으로 12조원이 넘었다.
컨소시엄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HMM과 합병한 뒤 HMM의 현금을 배당받거나 유상감자 등을 실시해 인수금융을 상환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추측이었다. 차입매수(Leveraged Buy Out·LBO)는 불법은 아니다. 다만 거액의 현금이 고스란히 인수자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매도자 측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특히, 현 HMM 주주들의 우려가 크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IB 업계 관계자는 “매각 후에도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계속 주주로 남아있을 것이며, HMM은 심지어 상장사”라며 “그런 상황에 새 주인이 현금을 함부로 빼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한 뒤 5년간 현금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팬오션이 2021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하림USA에 308억원을 투자하며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하림USA가 곡물 사업을 영위하는 대표적인 계열사이기에 출자했을 뿐이라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하림·JKL 컨소시엄이 HMM을 인수할 경우 배당을 실시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 다만 회사를 잘 운영해 정상화하는 게 인수자 입장에도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배당을 통해 현금을 무리하게 빼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면 하림·JKL 컨소시엄은 인수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하림지주의 올 상반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1조1000억원이며, 팬오션이 지난 16일 한진칼 지분 5.85%를 호반건설에 매각해 손에 넣은 돈은 1600억원 수준이다.
하림이 서울 양재동 물류센터 부지를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하림산업이 보유한 투자부동산의 공정가치는 작년 말 기준으로 8500억원에 달했다.
팬오션이 보유한 선박을 팔아 인수 자금에 보탤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노후화된 선박을 팔고 경제성이 좋은 배를 사는 건 팬오션 세일앤드퍼처스(Sale and Purchase·S&P) 부서에서 늘 하는 일일 뿐”이라며 “중고선을 팔아봤자 몇백억원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FI인 JKL파트너스는 블라인드펀드와 프로젝트펀드를 동원해 인수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프로젝트펀드를 결성할 예정인데, 규모는 당초 업계에 알려진 수준(5000억~6000억원)에는 한참 못 미칠 전망이다.
③ 김홍국 하림 회장 아들, JKL서 실무 담당
하림·JKL 컨소시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하림 오너 부자(父子)의 협업이다. 김홍국 하림 회장의 아들인 김준영 시니어매니저가 현재 JKL파트너스에 몸담고 있다.
김 매니저는 1992년생으로, 2018년 하림지주 경영지원실 과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2021년 JKL파트너스에 입사했고 올해 3월부터는 NS쇼핑 사내이사도 맡고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김 매니저는 비단 이번 딜뿐 아니라 이전에 JKL파트너스에서 진행했던 여러 딜을 담당해 왔다”며 “JKL 합류 전 하림지주에서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만큼 회사를 재무나 컨설팅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안다”고 전했다. 이번 HMM 인수 건에서도 실무를 담당하며 밤샘 근무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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