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세상만사 <11>]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세 가지 시나리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던 중동 지역이 2023년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10월 13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북부 120만 명 주민에게 24시간 이내에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경고를 내보냈다.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00명 이상의 이스라엘 국민을 학살하고 100명 이상의 인질을 사로잡은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전면적인 가자 지구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전역에 대한 강도 높은 폭격을 진행하고 있으며 물과 에너지를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등 유례없는 강력한 봉쇄에 나서고 있다. 10월 16일 기준으로 이스라엘군은 36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의 병력을 가자 지구 인근에 배치하면서 하마스와의 대규모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일방적 보복전으로 진행될 것 같았던 분위기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규모 봉쇄와 폭격이 언론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중동 지역의 해묵은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대두되고 있으며, 유럽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반유대주의 흐름이 등장하면서 국제 여론은 양측 모두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역 내 핵심 세력 가운데 하나인 이란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 시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밝힘에 따라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인 현시점에서 우선 몇 가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향후 변화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시나리오 1│이스라엘·하마스 대결로 종결
첫 번째 시나리오는 현재의 국면이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양자 간 대결로 종결되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군의 목표는 가자 지구에 대한 대규모 지상전을 통해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고 하마스가 구축해 놓은 가자 지구 내 총 480㎞에 이르는 지하 시설물들을 파괴함으로써 하마스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이 시나리오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에 대한 이스라엘의 상응 수준의 보복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 내에 진입해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마스는 안방인 가자 지구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으며 효과적으로 이스라엘군에 최대한 피해를 줄 다양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피아식별이 곤란하며 연속적인 근접전이 벌어지는 시가전은 이스라엘군에 지속적인 인명 피해를 입히면서 뚜렷한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가도록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공군력 및 기갑 전력을 통한 공격에 특화돼 있는 반면 시가전에 필요한 충분한 보병 전력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중장갑 장갑차 그리고 직접적인 화력 지원을 수행하는 자주포 전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적은 인구 규모로 인해 인명 피해 규모에 민감한 이스라엘 특성상 지상전이 1개월 이상 진행되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사회적·경제적으로 이스라엘이 감내하기는 어렵다.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불분명하게 마무리될 경우 이스라엘은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 반면 하마스는 승리를 선언하고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대변자이자 아랍의 영웅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가자 지구를 점령하더라도 이것을 유지하기는 어려우며, 하마스 이외의 많은 무장 단체가 다시 주도권을 잡고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을 가할 가능성도 크다.
시나리오 2│헤즈볼라의 개입
두 번째 시나리오는 헤즈볼라가 개입하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 남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조직으로서 하마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닌 레바논의 집권 연립정당일 뿐만 아니라 이란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남부 가자 지구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단행할 경우 이스라엘로서는 양면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006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을 침공해 헤즈볼라 세력을 제거하려 했지만, 시가전 과정에서 오히려 큰 피해를 입고 애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철수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헤즈볼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물론 군사력 자체로만 보면 이스라엘은 양면 전쟁을 유리하게 전개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동 전체로의 확전을 우려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이스라엘에 집중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 시나리오는 헤즈볼라가 철저하게 이란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하마스에 의해 시작된 중동의 변화를 이용해 이란이 직접 개입을 피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취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3│이스라엘·이란 전쟁 확대
세 번째 시나리오는 이란이 분쟁 국면에 직접 개입하면서 이스라엘과 직접 교전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중동 내에서 가장 상호 적대적인 대립 관계를 지속해 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 움직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으며 이를 늦추거나 무력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으로서는 최근 미국의 후원하에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과 국교 수립을 통한 우호 관계 확대를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봐 왔으며,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 수립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슬람원리주의에 대한 피로감과 반발로 인한 대규모 시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과 대결은 국내의 대립 구도를 전환시킬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맞서는 이슬람의 대표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중동 내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 간의 군사적 대결은 중동 지역 내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제일 우려하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이란이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 대신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에 나서더라도 세계경제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모두가 양국 모두에 자제와 진정을 당부하는 것도 이들 간 대결이 가져올 파멸적인 결과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기습 공격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유례없이 커지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균형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등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고립 국면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이란은 헤즈볼라, 하마스 등 무장 군사 세력들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견제해 왔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과 더불어 UAE를 비롯한 아랍국가와의 국교 수립 및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완충지대를 확대하면서 맞서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국교 수립이라는 중동 평화의 상징적 순간이 가시화되고 있는 순간 터져 나온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의 전략적 구상에 대해 큰 타격을 줬고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단기간에 가자 지구를 장악하고 하마스를 제거하는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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