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골키퍼는 세상을 다르게 본다] 뇌과학으로 축구에 최적화된 선수 선발 가능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11. 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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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데 헤아가 브라이턴과 경기에서 골을 막아내는 모습. 데 헤아는 올 초 최다 무실점 경기를 한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다. 골키퍼는 시각과 청각 정보를 분리하는 능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나 골 에어리어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경기장에서 골키퍼는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과 청각 정보를 분리하는 능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나 골 에어리어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더블린 시립대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맥거번(David McGovern) 교수 연구진은 10월 10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골키퍼가 세상을 인식하고 다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다른 선수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최초의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올해 유럽축구연맹(UEFA) 유소년 리그에서 네덜란드의 AZ 알크마르가 우승했다. AZ 알크마르는 뇌과학에 기반한 선수 기용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같은 강팀을 잇달아 격파했다. 사진 유럽축구연맹

프로 골키퍼 출신이 심리학 연구 진행

이번 논문의 제1 저자는 더블린 시립대에서 행동신경과학 석사 학위 과정에 있는 마이클 퀸(Michael Quinn)이다. 그는 아일랜드 프로축구리그 골키퍼 출신이다. 이버지인 나이얼 퀸(Niall Quinn) 역시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 AFC의 구단주를 맡고 있다. 퀸은 “프로 선수로 뛴 경험을 바탕으로 골키퍼가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파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석사 학위 과정 마지막 해에 이를 입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을 위해 프로 축구 선수 중 골키퍼 20명과 수비수나 미드필더, 공격수 등 20명 그리고 일반인 20명을 각각 모집했다. 실험 참가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화면을 통해 한두 개의 이미지가 짧게 깜박이는 섬광 영상을 보여주며, 동시에 신호음을 들려줬다. 신호음은 한 번이나 두 번 울렸으며, 신호음이 없을 때도 있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한 번의 섬광과 두 번의 신호음이 주어지면 섬광이 두 번 있었다고 착각했다. 시각과 청각 자극이 섞여버린 것이다. 섬광과 신호음 사이 간격이 짧으면 그런 착각은 더 심했으며, 두 자극 사이 시간 간격이 길어지면 착각은 줄었다. 연구진은 골키퍼는 다른 축구 선수나 일반인보다 섬광과 신호음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짧아도 섬광과 신호음의 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골키퍼는 시각과 청각 신호 착각 비율이 두 그룹보다 낮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골키퍼는 섬광과 신호음 사이 시간 간격을 116밀리초(1밀리초는 1000분의 1초)까지 구분했다. 다른 포지션의 축구 선수(150밀리초)나 일반인(192밀리초)보다 뛰어났다. 또 섬광과 신호음을 구분하는 시간 간격 차이도 골키퍼 그룹이 0.22밀리초로 다른 포지션 선수(0.67밀리초)나 일반인(0.57밀리초) 참가자보다 낮았다.

타고난 능력인지, 훈련 결과인지 규명 필요

맥거번 교수는 “이번 결과는 골키퍼가 다중 감각 신호를 더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청각과 시각 정보를 잘 분리하는 능력은 경기장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코너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다른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이때는 평소보다 청각 정보에 더 많이 의존한다. 골키퍼가 상황에 맞게 시각과 청각 정보를 잘 분리하면 그만큼 잘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앞으로 골키퍼의 인지적 특성이 타고났는지 아니면 훈련을 통해 발달했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여자 축구 선수와 다른 포지션 선수들도 각각 다른 인지 특성이 있는지 분석할 계획이다. 맥거번 교수는 “전 세계의 많은 축구 선수와 팬이 골키퍼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적 증거로 이 주장을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선수들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면 경기력을 향상하고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뇌과학으로 축구에 적합한 선수 선발

뇌과학으로 스포츠를 분석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팀들은 최근 타자들의 타격 능력을 높이기 위해 뇌과학을 활용했다. 타격 순간 타자의 뇌 활동을 분석해 유망주를 발굴하고 타격 기량을 높일 단서를 찾는 식이다. 미국 프로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는 뉴로스카우팅(NueroScouting)이 개발한 비디오게임을 마이너리그 훈련 코스에 넣었다. 게임은 간단하다. 화면에 다양한 구질과 속도로 공이 다가오면 배트를 휘두를 순간에 대신 키보드를 누르면 된다. 시카고 컵스와 탬파베이 레이스도 같은 회사 게임을 마이너리그 선수의 훈련에 넣었다. 선수들은 게임 성적이 느는 만큼 실제 타격 실력도 늘었다고 했다. 다양한 구질을 반복적으로 치면서 뇌의 판단 속도가 높아진 것이다. 감독들은 게임 성적을 보고 타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축구에서도 뇌과학을 활용한 성과가 나왔다. 올해 유럽축구연맹(UEFA) 유소년 리그에서 네덜란드의 AZ 알크마르가 우승했다. AZ알크마르는 전통의 강호인 레알 마드리드를 4 대 0으로 이겼으며, 바르셀로나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도 각각 3 대 0, 5 대 0으로 완파했다. 비결은 뇌과학이었다. 네덜란드 브레인퍼스트(BrainsFirst)란 회사가 축구에 적합한 두뇌를 가진 선수를 선발하도록 도운 것이다.

브레인퍼스트에 따르면, 엘리트 축구 선수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지는 않지만, 특정 측면에서 두뇌가 훨씬 더 빠르게 작동한다. 이를테면 골키퍼는 예측력과 함께 정보를 바탕으로 빠른 판단을 하는 반응성이 중요하고, 미드필더는 다양한 감각 정보를 단기간 기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는 선수들이 어느 포지션에서도 뛸 수 있는 ‘토털 축구’를 추구한다. 그러려면 선수들이 종합적인 인지 능력과 많은 양의 정보를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AZ 알크마르는 브레인퍼스트의 도움을 받아 전방위적인 인지 능력이 뛰어난 선수를 확보해 포지션을 쉽게 전환하는 유연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브레인퍼스트는 게임 형태의 인지 테스트를 통해 선수들의 기억력, 예측력, 집중력, 자제력 등을 파악했다. 두뇌는 선수의 몸값을 좌우했다. 브레인퍼스트에 따르면, 2014~2019년 첫 인지 테스트에서 점수가 상위 3분의 1에 속했던 유소년 선수는 하위 3분의 1에 속하는 유소년 선수보다 나중에 평균 시장 가치가 약 7배 높았다. 현재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여러 축구팀이 유소년 선수 선발에 브레인퍼스트의 도움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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