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미술관 산책 <3>]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도 예술 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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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미술박람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한 작품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구글은 이보다 앞선 2016년 2월 알파고에서 선보인 딥 러닝을 적용한 AI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인 '딥드림(Deep Dream)'을 개발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재현하게 했다.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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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미술박람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한 작품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원명 Théâtre D’opéra Spatial)’이란 제목의 이 작품이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그리지 않은 그림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논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회에 출품하는 작품은 당연히 ‘사람’이 개입한 작품일 것이라는 우리 일반의 선입견 때문이다. 또 ‘작가가 그리지 않은 AI 그림을 과연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하지만 논란은 간단하게 정리됐다.
심사위원들은 사전에 AI가 그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디지털 아트 부문 규칙에 “디지털 기술을 창작 과정에 사용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고, 출품자 이름을 ‘미드저니를 사용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via Midjourney)’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주로 디지털 아트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현실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인터넷에 있는 기존 이미지를 조합해서 만든 복제 이미지를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기존 이미지의 잘 정돈된 또 다른 이미지다. 범용적으로 사용된 AI 그림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여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인 예술성과 창의성이 결핍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만이 예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지지자가 있듯이 AI의 예술 활동을 창작 영역으로 지지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예술 영역에서 AI가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글이 개발한 AI 그림 프로그램
누구나 AI 하면 알파고(AlphaGo)를 떠올릴 것이다. 2016년 3월 총 5회에 걸쳐 서울에서 진행된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와 한국의 바둑기사 이세돌 간 바둑 대결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함으로써 AI는 우수성과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구글은 이보다 앞선 2016년 2월 알파고에서 선보인 딥 러닝을 적용한 AI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인 ‘딥드림(Deep Dream)’을 개발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재현하게 했다. ‘딥드림’은 기존에 학습한 명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11명의 프로그램 엔지니어가 AI 프로그램에 개입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을 재현했다. 비록 거대 자본의 AI를 알리는 상업적 의도가 엿보이는 이벤트였지만, AI가 그린 최초의 그림이 경매를 통해 수집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만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존 가치관에 대한 AI의 첫 도전이었다.
AI가 창조적으로 그림 그리다
이듬해인 2017년 더 진일보한 AI 그림 프로그램이 선보이게 된다. ‘아이칸’의 등장이다. 아이칸(AICAN·AI Creative Adversarial Network)은 미국 러트거즈대 예술·인공지능 연구소(Rutgers Art & AI Lab)에서 만든 사람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AI 프로그램이다. 미술 분야에 적합하게 개량한 ‘창조적 적대 신경망(CAN·Creative Adversarial Networks)’이라는 새로운 자체 개발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했다.
이런 알고리즘 방식으로 ‘아이칸’을 유명 작가들이 물감을 쓰는 스타일이나 점묘법 같은 기존의 독특한 표현 형식까지 딥 러닝을 통해 학습하게끔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후 개최된 아트 바젤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다수의 관람객은 작품이 심오하고 영감을 준다고 답변했고, AI 작품이란 말을 듣고는 놀라워했다고 한다.
최초의 AI 휴머노이드 로봇 화가 ‘아이다’
2019년 영국에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형태인 AI 화가가 등장했다. 세계 최초로 인간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화가 로봇의 등장이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다(Ai-DA). 영국 아트딜러 에이단 멜러(Aidan Meller)의 기획으로 대학 연구자들이 합작해 만든 세계 최초 AI 휴머노이드 화가 로봇이다. 이전의 AI 프로그램과 인간 모양의 로봇이 결합된 형태다.
로봇 화가 아이다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여성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세계 최초 AI 로봇 화가는 이런 이유로 여성 복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그녀는 작품을 만들 때 눈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스스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술 작업을 수행한다. 오노 요코와 칸딘스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그녀의 작업은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2020년에 개인 전시회를 개최해 100만달러(약 13억5000만원) 이상의 작품 경매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AI가 그린 이미지에는 정신성이 없다
‘알파고’로 AI의 존재를 알린 AI 시대는 자율자동차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대화형 생성 AI(Generative AI)인 챗GPT 등장은 명령어 하나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는 수준까지 범용화되고,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으도 출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가 인류가 남긴 문명사의 첫 흔적이었듯이 기술 발전이 낳은 새로운 흔적인 AI 작업이 예술의 한 부분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의 그림은 아무리 심층 학습해 스스로 만든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미지를 재현한 생산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술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예술가의 예술적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작품에는 문명사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맥락 같은 근원적인 정신성이 없다. 오히려 튜브 물감의 발명이 인상파의 등장을 도왔듯이 AI 기술이 기존 미술 영역과 발전적 협업을 통해 새로운 미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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