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뛰어넘는 ‘정세랑 월드’… “난 소설가보단 이야기작가”

박세희 기자 2023. 11. 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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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출간… 정세랑 작가
처음 도전하는 추리·역사소설
통일신라 남장여성이 주인공
“현실서 벗어나 시야 넓혀주길”
설자은 시리즈 3권 출간예정
“정점에 이른 한국 문화·경제
어떻게 오래갈수 있을까 고민”
신작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낸 정세랑 작가를 지난 10월 30일 문화일보에서 만났다. ‘설자은 시리즈’로 ‘정세랑 월드’는 보다 넓어졌다. 박윤슬 기자

통일신라 시대, 육두품 집안의 여섯째 딸 미은. 양친은 병으로 세상을 뜨고, 총명한 머리로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다섯째 자은마저 갑자기 숨을 거두자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던 셋째 오빠가 미은에게 말한다. “오늘부터 넌 ‘자은’이다.” 자은은 오빠 대신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신라에 돌아오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정세랑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설자은 시리즈’의 시작,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문학동네, 이하 ‘설자은’)다.

지난 10월 30일 문화일보에서 만난 정 작가는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해 대학 전공도 역사교육과다.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2016년부터 자료 조사를 해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와 김탁환 작가의 ‘백탑파 시리즈’가 도움을 줬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에 이어 ‘설자은, 불꽃을 쫓다’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까지 총 3권이 출간될 예정으로, 정 작가는 10권 이상의 시리즈가 됐으면 좋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자 희망을 밝혔다.

신작은 정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추리소설이자 역사물이다. 통일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적이 사라진 국가에서 풍요가 유지되지 않고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고 말했다. “바깥에 적이 없을 때 지배층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먼 시대의 모습을 빗대 써보고 싶었어요. 지금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멋진 성취를 해내는데, 정점에 이른 다음 하락하는 역사적 패턴이 있잖아요. 짧은 정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더해, 어떻게 하면 계속 잘해낼 수 있나를 모색해 보고 싶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가 배경이지만 그때를 재현하려 하진 않았다. 작가는 소설 앞머리에 “기록과 유물의 빈틈을 파고들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라고 밝힌다. “자료를 찾다 보면 조금 더 알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자료가 없을 때가 많았어요.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더 좋았지요. 학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라 다행이에요. 하하.”

남장 여성이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설정은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익숙하게 봐오던 것이다. 작가 역시 “이 클리셰를 택할지 말지 끝까지 망설였다”고 했다. “오래 가져가고 싶은 시리즈예요. 이 인물을 발해에도, 일본에도 보내고 싶은데 그냥 여성으로 두자니 개연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이 설정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정 작가는 독자들이 ‘설자은’을 읽으며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장르문학의 경우 코앞의 문제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스트레스도 많고 닥친 문제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은데요, ‘설자은’을 계기로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보길 바라요. 그 후 다시 돌아오면 새로운 뭔가가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 작가만큼 작품의 장르 구분이 무의미한 작가가 또 있을까. 일상과 기이한 판타지가 결합한 ‘보건교사 안은영’부터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담아낸 ‘시선으로부터,’까지, 한계 없는 그의 이야기들을 팬들은 ‘정세랑 월드’라 부른다. 그는 “쓰고 싶은 내용에 ‘딱 맞는 틀은 뭘까’를 생각하는 편”이라고 했다. “딱 장르문학만 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어요. 리얼리즘 소설도 3권 이상 썼고요. 아마 여러 장르의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 작가는 매체도 뛰어넘는다. 드라마, 애니메이션 각본을 썼고 걸그룹 서머 필름 시나리오 작업도 하는 등 다방면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을 “소설가”라고도 생각하지만 그보다 “이야기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하는 편이에요. 물론 하나만 파고드는 작가들의 작품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하지만 전 그보단 이야기라는 큰 틀을 갖고 여기저기 편하게 흘러다니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도 힘 빠지지 않고 계속 쓰는 할머니 작가가 되는 게 바람입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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