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자연에 귀의한 인공의 꿈 [김용석의 언어탐방]
김용석 | 철학자
1967년 착공하여 1973년 10월15일 완공한 소양강댐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이런 사실은 수많은 뉴스와 이슈에 쉽게 묻히겠지만 우리나라 댐 건설의 역사는 깊고 넓은 성찰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토목과 건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내 건설과 해외 건설 모두 경제·사회·문화·정치사의 변천과 밀접하다.
2008년 말~2012년 봄 수십조원 예산을 들인 ‘4대강 정비 사업’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며 앞으로도 논란은 지속되리라 본다. 속된 말로 ‘삽질’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다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대규모 공사에는 해당 지역민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삶과 연관된 여러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공선이 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철저하게 기획해서 시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공동 자산으로 남는다. 그러지 않으면 국토의 암 덩어리가 된다.
영어 댐(dam)은 넓게는 보(洑)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치수(治水)의 대명사이다. 댐이란 말은 ‘막다’ ‘차단하다’라는 뜻의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다. 이는 저지대에서 물의 침투를 막아 토지를 확보해야 했던 암스테르담(Amsterdam), 로테르담(Rotterdam) 등 그 지역 도시 이름의 어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말이 중세 영어로 전이되었고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을 인공(人工)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물들도 자연환경을 변형하면서 많은 것을 만든다. 그들은 생태계의 엔지니어다. 두더지, 미어캣 등 수많은 동물이 굴을 파고, 흰개미는 자기 몸집보다 거대한 탑을 지으며, 새들은 자연 곳곳에 다양한 둥지를 튼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에는 ‘동물공’(動物工)이 있다. 종종 자연환경을 ‘침범하는’ 인공과 달리 동물공은 훨씬 더 환경친화적이다. 또한 어떤 동물이 만든 토굴, 탑, 둥지, 나무 구멍 등은 다른 종들도 사용할 수 있어서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인공 댐의 역사는 기원전 수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매우 오래되었다. 하지만 동물이 만든 댐의 역사는 그에 비할 바 아니다. 자연사만큼이나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댐을 만드는 생태계 엔지니어의 대표적 사례로 비버를 들 수 있다. 비버의 댐 ‘건설’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종들에게도 많은 혜택을 가져온다. 비버는 강가 숲에 변화를 주고 습지 서식지를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더 많은 종의 동물과 식물들이 그런 환경에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서식지와 종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비버의 댐 건설은 환경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에 따라오는 부(副)작용은 긍정적 차원을 가짐으로써 덧셈 효과를 낸다.
반면 인공 댐은 환경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궁핍하게 만들기도 한다. 부작용이 부정적임으로써 뺄셈 효과를 낼 수 있다. 댐 건설이 양적으로 수자원을 확보하면서도 수질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그렇다. 언제나 우리를 가르치는 건 자연, 이를 잊기는 쉽지만 부정하기는 힘들다.
역사가 가르침을 준다는 건 다 안다. 그럼에도 성찰을 위한 역사적 사례를 잘 찾아보는 일은 소중하다. 고대 로마인들이 건축과 건설에서 인류 역사상 획기적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인들은 한손에 칼(sword)과 다른 손엔 삽(spade)을 들고 영토 확장과 문명 전달에 나섰다. 이런 특징을 ‘2S’라고 표현한 역사학자도 있다.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듯 수많은 건축물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함의하듯이 그들은 도로 건설의 귀재였으며 특히 ‘3대 치수’ 사업, 곧 다리, 수로, 댐 건설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들은 ‘물의 힘’을 성스럽게 대했는데, 수력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항상 성심성의껏 대하는 태도를 유지해 대규모 토목 공사에서 실패를 줄이고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로마 사람들이 건설한 다리, 수로, 댐과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는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그들은 토목과 건설 기술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개발했고 무엇보다도 그에 소요되는 자재 관리에 철저했다. 로마식 콘크리트는 오늘날에도 연구 대상이다. 자재 관리는 토목과 건설의 기본으로 그들은 기본에 충실했다.
둘째는 실용성이다. 유럽과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로마 유적을 보면, 로마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3대 치수 사업을 광범위하게 벌였다고 느끼게 되는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정말 필요한 곳’에 ‘적합한 건설’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실용성의 핵심이다. 물론 통치자와 정치인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공공성 또한 확보할 수 있다. 그들은 삽질을 정말 잘했던 것이다.
셋째는 내구성이다. 그들이 만든 댐과 다리 가운데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구조물들이 시간의 시험을 견뎌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줘 문명적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로마 유적은 고대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추진력 가운데 하나였으며 현대 건축에서 신고전주의 탄생의 원동력이었다.
끝으로 미학적 요소를 들 수 있다. 모든 건축물에서 미학적 요소를 중시하면서도 댐, 다리, 수로에 관해서는 이 점을 간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미적 차원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헤밍웨이가 그랬던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로만 가득 찬 풍경보다는 인공이 가미된 풍경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로마의 댐과 다리 그리고 지상에 올린 아치형 수로는 인공 구조물이지만 ‘자연 풍경에 귀속되도록’ 자리 잡아 건설되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풍광 속 댐을 자연의 그림 같은 요소로 받아들이게 된다. 댐은 자연에 귀의한 인공이 된다. 이것이 댐의 미학적 역설이다. 또한 자연과 함께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능력의 미적 승화다. 너무 나갔다고? 천만에! 이 정도의 마음가짐 없이 국가적 역사(役事)를 실패 없이 제대로 해낼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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