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처럼 살아보려 귀촌… 퇴고 7번… 꼭 농사 같네요”
천주교도 정해박해 소재 맞춰
곡성서 ‘마을 소설가’ 삶 시작
농사짓고 책 팔고 글쓰기까지
4년 매달려 원고지 6000장 써
“이책 안봤다면 나를 모르는 것
시간 갖고 독자들과 생각 공유”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김탁환이란 사람을 제대로 모르는 겁니다.”
지난달 25일 문화일보에서 만난 소설가 김탁환(55)은 최근 출간한 신작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해냄)을 두고 “앞으로의 행보와 정신성이 들어 있는 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30년 가까이 펜을 쥐고 서른 권의 장편소설을 쉼 없이 써내며 빚은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았단 뜻이다. 이내 “한 작가가 오랜 시간 구축한 세계관을 읽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단단한 김탁환의 세상을 깨뜨려 보라는 유머 섞인 도발을 건넨 그는 “사실 나조차도 내 책이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씩 웃는 그의 모습에선 자신의 인생을 집약했단 평가를 받는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놓고선 “나도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사랑과 혁명’은 김탁환의 또 다른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 할 만하다. ‘역사 소설가’나 ‘사회파 소설가’가 아닌 ‘마을 소설가’로서 말이다. 2021년 서울살이를 마치고 전남 곡성에 터를 잡은 그는 서울과 곡성을 수없이 오가던 2020년까지 더해 꼬박 4년을 매달린 끝에 원고지 6000장 분량의 대작을 완성했다.
지난해 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삶이 바뀌지 않고는 글도 바뀌지 않는다”고 밝힌 대로 삶을 바꿔 일군 첫 작품인 셈이다. 그는 “답사를 하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제대로 쓰고 싶단 욕심이 커졌다”면서 “소설 주인공이 농부와 나무꾼 같은 사람들인데 섬진강에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공동체의 삶을 직접 겪어봐야겠단 생각이 짙어져 아예 내려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 소설가일 땐 전업작가로서 ‘읽고, 쓴다’밖에 없었지만 마을 소설가는 다르다”면서 “농사짓고 책방에서 책도 팔고 마을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글을 써야 해 쉴 틈 없이 바쁘다”고 했다. 10여 년간 광장에 나갔던 그가 이제는 들판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책은 1827년 곡성에서 일어난 정해박해(丁亥迫害)를 소재 삼아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목숨을 내던지고, 때론 살기 위해 신을 등졌던 이름 없는 조선 천주교도들의 사랑과 믿음, 희망을 그렸다. 언뜻 보면 가톨릭 색채를 띤 종교소설 같지만 속은 복잡다단하다. 종교를 내세워 문학적 상상력을 풀어내면서도 치밀한 고증을 통해 조선의 암흑기로 불린 19세기 역사를 탐구하고, 과거를 비춰 오늘을 고발하는 사회적 성격도 짙기 때문이다. 문학의 정체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읽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건 덤이다. 김탁환은 “핵심은 변화다. 신이나 어떤 사상을 접하면서 삶의 틀을 깨고 변화하는 의미로 접근한다면 종교소설도 맞다”면서도 “모든 역사소설은 다 현재가 겹친다”고 했다. 그의 세계관에서 장르의 분류는 무의미해진 셈이다.
그는 이어 “요즘 문학답지 않게 친절하지도 않다”며 “서사 흐름이 자연스러웠던 앞선 ‘불멸의 이순신’이나 ‘압록강’ 같은 대하소설과 달리 이번 작품은 권마다 주제와 개념이 다르고 2권에선 심지어 주인공인 들녘이 등장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곡성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들었던 작물로 무농약 배추를 꼽은 그는 “1년간 7번을 퇴고했는데, 퇴고할수록 어렵고 힘들었다”면서 “이 책이 딱 배추 같다”고도 설명했다.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일까. 김탁환은 덤덤하게 독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출간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북토크 등 독자와의 만남을 가지지 않는 이유다. “퇴고하다 늦어져 내려가면 벼도 베야 하고 심어 놓은 고구마도 수확해야 한다”는 그는 “3권이나 되는 책을 읽기가 어렵지 않으냐.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고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준 다음에 이야기를 나눠 볼 계획”이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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