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하면 도태되는 사회… ‘이게 맞느냐’ 묻고 싶었다”

이정우 기자 2023. 11.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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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각자도생 시기예요. 누명을 쓴 세 소년처럼 능력 없는 사람들은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게 맞아요? 안 맞죠. '당신들은 이게 불편하지 않아?' 이게 영화로 말하고 싶은 거예요."

사회와 인간에게 절망한다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영화를 통한 '변혁'을 바라는 노감독의 진심이 반영된 덕분일지 모른다.

16년 후 피해자의 딸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윤미숙(진경)이 찾아오고, 재심에 나선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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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들’ 개봉… 정지영 감독
검·경 대표적 부실수사 사건
‘삼례 나라슈퍼’ 실화 재구성
“내 작품 중 가장 촉촉한 영화”
영화 ‘소년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지금은 각자도생 시기예요. 누명을 쓴 세 소년처럼 능력 없는 사람들은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게 맞아요? 안 맞죠. ‘당신들은 이게 불편하지 않아?’ 이게 영화로 말하고 싶은 거예요.”

영화감독 정지영(76·사진)의 영화는 늘 화가 나 있다. 베트남전의 실상을 드러낸 ‘하얀 전쟁’(1992)부터 법정 부조리를 꼬집은 ‘부러진 화살’(2012)까지. 실화를 소재로 사회를 고발하는 그의 영화는 분노한 만큼 강렬하지만 또 그만큼 건조하다.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소년들’(1일 개봉) 역시 경찰·검찰의 대표적 부실수사 사건인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다룬 만큼 영화는 뜨겁다. 영화 속 경찰은 고문과 협박으로 3명의 죄 없는 소년들을 강도살인범으로 몰고, 검찰도 합세해 진범이 나타나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런데 정 감독의 말처럼 “이제까지 작품 중 가장 촉촉한 영화”다. 사회와 인간에게 절망한다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영화를 통한 ‘변혁’을 바라는 노감독의 진심이 반영된 덕분일지 모른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화한 이유에 대해 “영화적으로 좋았다”고 답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부정한 공권력의 민낯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라며 “우리가 방관하거나 동조하진 않았는지 점검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해 남들보다 관심이 많아요. 이 땅에서 겪고 있는 사건들이 다 영화의 소재입니다.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게 내 일인데, 애매한 것보단 확실한 의미를 던지고 싶은 거죠.”

감독의 말대로 이번 영화도 선악이 확실하다. ‘미친개’로 불리는 전북청 수사반장 황준철(설경구)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고군분투하지만 거대한 조직 앞에 꺾인다. 16년 후 피해자의 딸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윤미숙(진경)이 찾아오고, 재심에 나선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 죄 없는 세 소년을 마구잡이로 잡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부정한 공권력의 뻔뻔함과 힘이 없어 이를 감내해야 했던 세 소년의 안타까운 모습은 대조를 이룬다.

분노의 화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향해 있다. 재심으로 그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음이 드러난 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비용을 들여 구할 만큼 세 소년이 가치 있느냐”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조직을 위해 세 소년이 희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분노하는 대상은 그들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유연하고, 부드럽다. 감정 한 톨 배제된 ‘부러진 화살’의 법정 장면과 달리 이번 영화의 재심 장면은 정서에 호소하는 순간이 많다. 스스로 “사랑, 우정, 가족 이런 건 관심 없는 드라이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정 감독에게 변화가 생긴 걸까. 그는 “시나리오를 쓴 정상협 작가 덕분”이라며 “그가 내게 부족한 감성을 불어 넣어줬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는 촉촉하죠. 분노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정서적으로 다가가 설득력이 높아졌길 바랍니다.”

정 감독은 늘 배낭을 메고 다닌다. 이날 인터뷰에도 배낭을 메고 혼자 걸어왔다. 설경구 등 ‘소년들’ 출연 배우들은 그를 ‘소년’이라 칭한다. 이런 소탈함 덕분이다. 정 감독은 “현장에선 모두 감독의 지시만 기다린다. 존재 자체로 권력자”라며 “권위를 일부러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본인이 자신감이 없을 때 아닌가요.”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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