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배·감을 잃은 계절[오늘을 생각한다]
“저 감 보이세요?” 손을 따라가니 흉측한 하얀 돌기가 붙고 까만 멍이 든 감들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저희 과수원도 감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했어요. 올해.” “그러면 수익은?” “없는 거죠.”
동료와 점심을 먹고 산책하며 대화를 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폭우로 상당한 과실이 떨어진 상황에서, 폭염으로 단감밭에 탄저병이 돌았다고 한다. 경남 과수 농가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단감의 도매가격은 지난해보다 26~41% 올랐다고 한다. 과수 탄저병은 그러나 재해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얼마 전 사과를 사려다 가격에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제일 싼 사과도 하나에 5000원가량 했다. 이번 추석 때 소고기 선물보다 귀한 것이 사과였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 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홍로의 평균 소매가격은 전년 대비 23.8% 올랐다.
가을에 흔하게 먹던 과일이 사과였는데, 이제는 껍질을 더 얇게 깎아야 하나 조심스러울 정도가 됐으니, 먹기가 부담스럽다. 조만간 사과도 배처럼 제사상에서만 볼 수 있는 과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사과 가격이 오른 이유는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사과는 봄철 개화 시기가 중요한데, 올해 3월은 이상고온으로 꽃이 일찍 피었고, 다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냉해를 입었다. 탄저병도 말썽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비와 태풍 그리고 병충해의 증가로 이를 방제하기 위한 화학농약과 비
료의 사용도 증가하고 있다. 화학농약과 비료를 생산할 때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늘어난다. 이것이 또 기후변화를 심화시킨다. 악순환의 고리다.
기후로 인한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전기로 작물을 키우는 사례가 많아진다. 아직은 농업용 전기요금이 저렴해서다. 전기요금이 현실화되거나 다른 외부 요인으로 급상승했을 때, 갑작스러운 에너지 비용 증가로 인한 부담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상흔을 남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됐을 때 농민들이 겨울철 실내 농사를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농사용 전기요금이 1킬로와트시(㎾h)당 2.7원 인상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상승했다. 생산비 증가로 인해 농민들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이다.
서민의 식탁에서 과일이 귀해지고, 농민들의 살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과일 삼총사로 여겨지던 사과, 배, 감을 잃은 가을이다. 여러 가지로 걱정이 앞선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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