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이달의 이웃비』 박지영 “어떤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최선의 이름은 바로 이웃”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작고하기 3년 전부터 아빠는 타인의 말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의 말 역시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이때 아빠에게 남은 말은 단 두 가지. ‘고맙습니다’와 ‘씨발’이었다. 고맙습니다, 마저 잊어버리자 마지막까지 남은 말은 씨발, 뿐이었다.
씨발, 이라니. 아빠는 평소 욕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씨발, 이라는 말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엘리베이터나 병원 대기실처럼 불편할 때마다 말을 뱉었다. 마치 틱처럼. 도대체 왜 끝까지 남는 말은 씨발이었을까.
치매에 걸린 아빠의 돌봄만 하고, 그 외 시간은 전부 오락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스스로 무용한 존재인데 단지 아빠를 돌보는 것만이 가장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만약 글을 쓰면서 아빠를 돌본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빠의 치매는 꾸준히 악화했다. 식사도 혼자 하지 못했고,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다. 팬데믹 시기에는 더욱 악화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면서 생활 루틴도 확 바뀌었다. 2020년 6월, 아빠는 결국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엄격한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아빠의 치매와 자신의 돌봄 노동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자신과 작품이 감정적으로 너무 가까워 발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1년 잡지 「릿터」에 단편소설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를 발표했다. 아빠는 이듬해 4월 먼 곳으로 떠났다.
“가장 절박한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생각해 썼던 것이었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빠를 돌볼 때 주로 밥솥이 있는 식탁에서 생활했지요. 비록 아빠가 말씀도 못하시고 감정 표현도 못하셨지만, 굉장히 기뻐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단편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강만석의 간병인을 자처한 선동의 좌충우돌 돌봄 노동기다. 씨발과 염병 같은 말은 맥락에 맞게 찰지고, 너무 애쓰지 마라는 아버지의 말 역시 랩처럼 메아리친다.
삼남매의 막내 선동은 치매 아버지의 돌봄 대가로 형과 누나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최소 비용만을 받게 된 선동은, 치매 걸린 아버지의 일상을 영상화해 인기 유튜버가 되려는 꿈을 꾼다. 어릴 적 친구 제영무의 유튜브를 보면서 자극을 받게 되면서 선동의 폭주가 시작된다.
“강선동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착했다. 서른아홉이 되어서야 강선동은 자신과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착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착함은 양보가 아니었다. 희생이 아니었다. 투쟁하고 악착같이 싸우고 탐욕스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 세끼 성실하게 꼭꼭 씹어 든든하게 먹고 근력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우며 사라지지 않도록 버텨 내야 하는 것이었다.”(59쪽)
소설가 박지영이 등단작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부터 김유정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까지 8편의 단편을 엮은 첫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민음사)을 펴냈다. 작가는 10여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작품들에서 어지러운 세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한 사람들이 맺는 관계를 들여다본다. 매듭장인인 엄마의 공방을 물려받은 경주와 침해적 관계의 미연(「경주는 왜냐하면」), 개인 홈페이지에 만화를 올리는 ‘나’(「내 글에서 냄새 나?」), 구립 아트센터에서 소품 강좌를 하는 ‘나’와 모욕당하는 민주(「누군가는 춤을 추고 있다」)⋯. 특히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부자간의 돌봄, 「경주는 왜냐하면」는 모녀 또는 유사 모녀관계의 돌봄, 「이달의 이웃비」는 이웃 간의 돌봄을 각각 들여다본다. 작품 속에는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빛나는 문제의식과 함께 찰진 말들이 가득.
박지영 작가는 왜 작품에서 아무나가 아닌 이웃이 되기 위해 필수 지출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박 작가를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아버지 만석이 아들 선동의 반려밥솥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만석이 이제는 없기 때문에 선동 스스로 자기의 밥솥이 돼서 자신을 조기 치매로 설정을 해놓고 유튜브를 더 지속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보온을 시작합니다,는 쿠쿠 밥솥의 소리를 듣고서 책에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 지점과 조금은 멀어져 있는 장면이기는 하다.”
―염병이라는 욕설이 잘, 찰지게 사용된다. 실생활에서 염병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지.
“(염병이라는 말을) 자주 하진 않는다(웃음). 아무래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연결시켜서 하려다 보니까 염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씨발이라는 말과 팬데믹 상황에서 염병이라는 말을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약간 톤을 띄워서 코믹하게 다루기 위해서였다.”
―글이 코믹하고 말맛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글이 좀 덜 문학적이길 바란다. 가능하면 생활감이 느껴지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원하는 것은 문학과 조금 거리가 있는, 너무 내밀해지지 않는 이야기, 생활이 느껴지는 이야기였으면 하는 생각들이 있다.”
―작품을 통해서 독자와 무엇을 소통하거나 공감하고 싶었는지.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11년 만에 다시 단편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다. 쉽게 익히고, 문장을 좀 짧게 가져가려고 생각했다. 치매가 무겁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가볍고 재밌게 읽히길 바라며 썼다.”
표제작 「이달의 이웃비」는 정신장애가 있던 형을 잃은 전직 공무원 동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석은 당근마켓에서 주기적으로 이웃들과 거래하는 병식을 만난다. 경찰 공시생으로 ‘배 순경’으로 불리는 병식은 필요치 않은 물건을 구매하고 거리를 청소하고 실종된 이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이웃으로 남기 위해서 지불하는 일종의 ‘이웃비’인 셈이다. 동석은 병식과 함께 사라진 이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사건을 목도하게 되는데.
“병식이 아무리 무해하다(고 거듭 증명한다) 한들 그 무해한 무지로 인한 작은 혼동마저 누군가에게는 불편이나 기피를 넘어 일상의 안온함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느껴질 것을 알았던 까닭이었다. 당근 거래 역시 병식이 지불하는 이웃비의 연장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건 동석이 그와 두 번째 거래를 끝냈을 무렵이었다.”(162쪽)
―작품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가.
“조현병이나 경계성 지적 장애를 앓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밤에 일할 때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연세가 지긋한 아버지가 40대 정도 되는 아들을 데리고 손을 잡고 산책하다가 쓰레기를 줍는 장면을 봤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마음에 남아서 언젠가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목과 관련해선 제가 글을 써서 어떤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최선의 지위는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너무 가깝고 어렵고 좁혀져 있다. 이웃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구상하게 됐다. 아울러 당근마켓 거래를 통해서 이웃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석이 병식에 대해서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진실은 모른다. 물어보지도 않고. 모르는 지점을 독자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결국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동석의 입장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해보고 싶었다. 동석은 스스로 이웃이 되는 것도 두렵고 병식을 이웃을 받아들이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계속 오해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등단작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은 고객들의 집을 방문해 청소기를 고쳐주는 수리 기사의 이야기다. 잘못 사용된 청소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오는 남자는 쓸모없는 것들로 가장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큰 꿈을 꾼다. 몽환적인 것이 오히려 매력적.
―작품이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쓴 작품이라서 그럴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맞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썼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어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서 가장 쓸모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일상적인 영웅 이야기를. 「이달의 이웃비」와 연작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마이쭈나 초코파이, 그와 유사한 작고 다정한 것들을 건네고 나눠먹는 것으로밖에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내 소설의 인물들은 자꾸만 별것도 아닌 것을 건네주고 건네받곤 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이웃이 되기 위한 이웃비는 어쩌면 별것 아닌 별것들이다. 가벼운 인사와 미소, 댓글, 작은 선물, 마이쭈와 초코파이 같은.
―등단 이후 무려 12년 만에 첫 소설집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단 단편소설 청탁이 없었고, 그 외의 방법을 몰랐다. 단편을 발표할 수 있다고 생각을 못해서 2013년에는 장편소설 공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소설집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작가들의 책이나 문학에 빚이 크지만, 갚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마음의 빚을 갚아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작가나 독자들에게 이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면서 엮었다.”
조카가 글을 배우고 깨우치기 시작했다. 그는 조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문뜩 자신도 한 번 글을 써보고 싶다고, 신춘문예에 응모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뒤 케이블 방송국 구성작가로 일하거나 학원 강사를 하는 등 소설 창작과는 다른 일을 해온 그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비롯해 책읽기를 좋아한 독서소녀였다. 백일장 대회 등에 학교 대표로 참여해 몇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1993년,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다. 글을 한번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마음을 잡지 못해서 늘 학교생활을 겉돌았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런 그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안 될 거야라는 생각도 한편으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생활 속에서 꼭 써야겠다는 계기를 찾아낸 셈이죠. 사실 글은 혼자 써도 되는데, 신춘문예로 등단을 생각했다는 것은 글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던 것도 같고요.”
대학 졸업하고 10여년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쓴 작품이 바로 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는 구하는 법」이었다. 이게 소설이 맞나. 소설이 맞는지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지영은 2010년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했다. 이때 그의 나이 36세였다. 이후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고독사 워크숍』 등을 펴냈다. 김유정문학상, 현대문학상 우수상,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은 추리 판타지 소설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해리성 장애를 가진 악역 전문 재연 배우가 등장한다. 『구독사 워크숍』은 고립되어 있는 개인들이 결국 고독사라는 워크숍을 통해서 연결되는 이야기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생계나 생활, 노동 냄새가 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균형을 잡으면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 너무 내밀화하거나 과거의 경험을 가져다가 쓰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담고 싶다. 아울러 소설 속 인물에게 무언가 좋은 것 한 가지를 주려고 노력한다. 주인공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바라보게 하는 지점에서 끝내고 싶다. 제가 만들 수 있는 세계는 소설뿐인데, 그 안에서조차 인물들에게 무언가 좋은 것, 조금이라도 환한 곳을 돌아보게 하는 일을 할 수 없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단편의 경우 구상을 많이 하지 않고 쓴다. 중간까지 알고 쓰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주인공하고 같이 결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쓴다. 인물과 결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쓰면 재미있고, 조금 더 폭넓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꿈이나 비전은.
“어렵다. 작품 속 동석이 난 글을 쓸 때만 착해지는 거 아닌가하고 고민하는데, 저도 그런 고민이 많다. 글을 쓸 때만 옳은 소리하고 착한 척 한다는. 제가 글을 쓸 때만 착한 이웃이 된다고 생각을 하면, 글을 아주 오래 쓰고 많이 쓰면 그 시간 동안 좋은 이웃일 수 있겠구나, 라는 정도의 해답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제가 지금 50인데도, 여전히 불안정하게 생계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글을 병행하느냐 고민을 한다. 꾸준히 생활감 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천천히 오래 쓰고 싶다.”
일할 때에는 주말에만, 쉬고 있는 지금은 주로 낮 시간 카페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돌아와선 저녁 무렵 집 주변 공원이나 거리를 산책한다. 그리하여, 박지영은 다시 내일의 글쓰기를 생각할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쓰기 위해서 매일 글을 쓰고, 매일 글을 써서 무리하기 않기를. 별것 아닌 것 같은 성실한 쓰기야말로 별것인 작품이 된다는 것을 믿으며. 마이쭈와 초코파이, 한마디 인사와 짧은 미소처럼.
그는 인터뷰 도중 대답을 하려다가 잠깐 멈추고 생각을 하기도 했고. 대답이 엉긴 뒤에는 말이 정돈되지 못했다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다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됐다. 얼마 뒤면,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대답을 들려줬으니까.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그러니까 이웃이 되겠다는 그 마음을.
“남자는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청량리를 출발해 은하수를 건너 울란바토르로 가는 204번 버스가 먼 우주를 돌아 남자를 태우기 위해 끼익, 브레이크를 밟고 정지할 것 같았다. 우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만 치켜들면 되었다.”(「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 259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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